"우리의 시대를 지배하는 비유는 농업이 아니라 공업에서 나온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는 우리는 인생을 기른다grow가 아니라 만든다make고 믿는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모든 것을 만든다는 문화의 오만한 자신감에 젖어 있다." (파커J파머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pp182-183)
오래 전, 귀농을 했을 때 논농사, 밭농사를 지으며 농부가 농사에서 하는 역할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만 그 일은 전체 농사의 백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역할이다.
결실은 씨앗과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그 사실은 농사를 지어보면 안다.농사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농사는 씨앗에 있는 생명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며때가되어 땅과 자연이 만든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 중에 인간의 개입은 거의 없다시피하다.마치 인간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생명은 그렇게 성장한다.
작은 씨앗뿐 아니라인간이란 생명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엘리트로 만든다는 착각 때문에우리는 인간을 더욱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인간을 키운다면, 돌본다면인간은 자기 결대로 온전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그리고 부모인 우리가 할 일은지켜보며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이다.그것이 생명 곁에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도서관에서 주말에 있을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핸드폰에 진동이 울려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막내야! 엄마가~” “엄마가 왜!” “엄마가 돌아가셨어! 얼른 짐 챙겨서 나와!” 그리고 나는 춘천으로 가는 언니의 자가용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엄마를 떠나 보내야 했다.
그날 나도 언니들과 엄마 보러 병원에 갔었더라면!
엄마는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져 응급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언니들은 월요일에 시간을 내어 춘천의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엄마를 보러 간 것이다. 그날 영상통화에서 “엄마 나 이번 주 일요일에 시험 끝나면 엄마 보러 갈게! 기다려!” 엄마는 기다리겠노라고 약속하고는 그렇게 가버리셨다. 엄마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삼우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몹시 아파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산부인과에 방문하여 검진결과 임신 3주 정도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둘째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날 얼마나 혼란스러웠었던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잃은 슬픔을 정리하기도 전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려 애써 즐거운 척 행복한 척하려 애썼지만, 또다시 나에게 찾아온 여러 가지 시련들로 힘들었던 나는 매일 매일 기도했다. 뱃속의 태아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행히 둘째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약간의 잔병치레를 했지만 잘 자라 주었다.
2016년 어느 날 놀이밥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란 강의를 듣게 되었고, 이후에 나는 건강한 놀이 문화 확산을 위해 플레이스타터가 되었다. 2021년 현재 돌이켜 보니 놀이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쏟았구나~ 우리가 함께라서 가능했던 것이겠지.
이번 글쓰기 학교는 어쩌면 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대표로 서의 책임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역시나 녹록지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으로 만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줌으로 만나 수다 떠니 좋기는 하다. 늘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글쓰기 학교에서 선정한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개정판을 읽으며 놀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왜 플레이스타터로 아직 남아있는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어느순간 나는 지난 2009년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했던 맹세가 생각났다. 둘째가 태어난 후 문득문득 들었던 생각이었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늘 고민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난 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조금은 더 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조금은 더 괜찮아! 할 줄 알며, 조금은 더 그럴 수 있어!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예뻐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놀이를 지지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우와! 멋진데! 난 잘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맹세를 잘 지키고 있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번 글쓰기는 어쩌면 내가 놀이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좋은 엄마가 너무나 되고 싶었던 나는 언제나 열정뿜뿜이었다. 육아휴직을 결정하면서 아이에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동네에 문화센터 수업은 다 들으러 갔고, 좋은 체험전이나 교육이 있다고 하면 발벗고 나서 참여했다. 품앗이 육아도 하며 아이를 정말 잘 놀아주는 엄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난 순간부터는 잘 놀아주는 엄마의 일상은 이어질 수 없었다. 내 욕심껏 아이들에게 해주려니 정말 힘들었다. 체력도 따라 주지 않았다.
아이맘카페에서 팝업놀이터가 열렸다. 어린 둘째를 안고, 첫째 아이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어 가게 되었다. 스스로 ‘잘 놀아주는 엄마’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날은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친구 엄마가 요구르트를 건네주었다. 아무 생각없이 둘째에게 먼저 주었고 첫째는 울음이 터졌다. 그 순간 아이가 왜 이렇게 우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아이는 계속 울었고 나는 집에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라는 마음이 삐죽하게 올라왔다. 온 김에 재미있게 놀고 가고 싶은 엄마 욕심이었다.
내 마음은 불편했지만, 끝내 아이는 정말 즐겁게 놀았다.
놀아주는게 아니라, ‘같이 노는’거였다. 나의 주도로 노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놀이를 잘 관찰한 뒤, 모방하고 칭찬하는 과정으로 아이와 같이 노는 것이 진정한 놀이였다.
오명화 선생님께서 우선 아이의 놀이를 잘 바라보라고 하셨다. 아이는 종이테이프를 길게 늘이며 여기저기에 붙이고 놀았다. 나는 아이의 놀이를 따라했다. 같이 종이테이프를 길게 늘여뜨려 붙였다. 아이는 정말 즐거워했다. 어느 정도 테이프를 늘이고 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저 테이프 비싼건데.. 우리 아이가 여기있는 테이프 다 쓰겠네...’
아마 이전같았으면 “이제 그만할까?”라고 테이프 사용을 막았겠지만, 배운대로 관찰+모방+칭찬을 위해 꾹 참았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만큼 테이프를 늘이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른 놀이에 참여했다.
그날 뵙게 된 오명화 선생님께 완전 반하고 왔다.
‘놀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오명화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고 연락드리며 얼마나 떨렸는지...
플레이스타터 교육에도 참여하고 싶지만, 일하는 시간과 겹쳐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생님께서 방학 동안 플레이스타터 모임에 참여해도 좋다고 흔쾌히 얘기해주셔서 정말 값진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아니 두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뭘 좋아해요~?” 라고 묻는데 도무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태껏 사회에서 요구되어서지는 목표를 쫓느라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제야 내 꿈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일이 꿈이라는 이야기에 내 삶에 귀 기울이며 ‘내가 좋아하는게 뭘까?’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만난 ‘놀이’
나는 놀이가 참 좋다. 그 놀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오명화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면서 놀이의 가치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놀이를 배우는 중이다. 이것이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오명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다.
바로 놀이를 만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내 삶과 우리 아이들의 삶에 분명히 큰 빛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놀이를 공부하게 되면서 두 아이의 육아가 정말 많이 편안해졌다. 놀이라는 것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어른도, 청소년도, 어르신도 모두의 삶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행복의 핵심은 ‘좋은 경험’에 있다. 그 시간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고,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을 안겨줄 수 있는 경험 말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좋은 경험을 찾아내고 이를 늘려가는게 중요하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기쁘고, 기다려지고,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경험이란 놀이와 유사하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행복한 건 잘 놀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더라도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고 발달시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휴식이다. 잘 놀아야만 활기가 생기고 재충전이 이루어진다.
출처 : <오티움> p37
내 인생에서 놀이를 만난 그 순간. 나는 그 순간부터 활기가 생기고 재충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의 인생에 행복을 선물해주었다.
오랜 육아휴직 후 복직한 학교에서 정말 오랜만에 담임교사를 맡게 되었다. 아이들과 만나기 전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며, 다시 신규교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플레이스타터에서 놀이에 대해 배우고 나서, 교사로서 ’놀이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사례를 만들어 1년간 운영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내 눈에 번쩍 들어온 ’꿈꾸는 교실 프로젝트 공모전
나는 놀이프로젝트로 꿈실공모전에 참여했다. 운좋게 우리 학년이 채택되었고, ’놀이로 하나 되는 우리, 놀이의 기쁨’을 주제로 4학년 아이들과 1년 동안 놀이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처음 계획서를 낸 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상황이 바뀌어 재차 계획서를 수정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놀이로 하나가 되는 시간을 꼭 가지고 싶었는데 등교일 수가 얼마 되지 않아 비대면, 비접촉놀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기로 했다.
온라인 수업만 가능한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슬기로운 집콕놀이‘를 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다양한 놀이를 소개하고 개인 놀잇감을 배부하여 각 가정에서 놀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보려 했다.
놀이꾸러미를 배부하여 각자 집에서 놀이하고, 스스로학습장에 하루생활 글쓰기로 놀이한 소감을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등교해서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추어 비접촉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해 아이들과 놀이시간을 가졌다. 신체활동이 사라진 아이들, 학교에 와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신체활동을 해보자고 결정했다. 발목줄넘기를 구입해 개인 배부하였다. 그리고 필로티에 모여 거리유지 후 함께 발목줄넘기를 하였다. 여름방학에도 가정에서 발목줄넘기를 활용하여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어찌나 즐겁던지. 이후로도 춤신춤왕과 같은 비접촉놀이를 했다. 체육과 음악교과와 연계하여 음악에 맞추어 난타연주도 해보았다.
코로나19 상황이 진행될수록 아이들과의 온라인 수업은 익숙해지고 있었다. 매주 진행되는 실시간 화상 수업에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 참 좋았다. 플레이스타터에서 했던 온라인 팝업놀이터를 학급 아이들과 해보아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우리만의 놀이모임 시간을 가져보았다. 각자의 집에서 같이 놀기! 미리 나누어주었던 탭볼을 랜선에서 만나같이 해보기로 했다.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던 그 순간. 잊혀지지가 않는다.
‘틈’과 ‘터’,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과 또래를 먼저 보고 가장 나중에 놀이를 보아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놀 거리가 없어도 놀 틈과 놀터와 놀 또래만 있으면 아이들은 논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놀지 않는 까닭은 전래놀이 같은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놀 것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놀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출처 : <아이는 놀이가 밥이다> p69
아이들에게 놀이밥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달았다. 대단한 놀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착각했다. 아이들은 랜선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누기만 해도 웃음이 끊이지가 않았다. 팝업놀이터를 위해 나누어주었던 탭볼은 놀이밥을 거들뿐 우리의 놀이에 중심이 되진 않았다. 그저 놀시간, 놀공간 그리고 같이 놀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야 하는 상황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이렇게라도 만나서 같이 놀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졌다.
작년은 정말 더 휘리릭 지나간 기분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즐거움과 기쁨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놀이로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나와의 대화가 이렇게 재밌는 건 줄 이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무작정 사회의 요구에 맞춰 사느라 나 스스로에게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책을 읽으며 내 삶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자꾸만 내 마음에, 내 감정에 귀 기울여주고, 질문해주며 나만의 답을 찾는 과정이 참 즐겁다. 나 찾기의 그 즐거운 여정을 우리 아이들과도 나누고 싶다.
‘놀면 뭐하니’ 프로그램을 정말 재밌게 보았다. 그런데 플레이스타트 글쓰기학교 같은 조 분들의 팀명이 ‘안놀면 뭐하니’ 였다! 듣자마자 웃음이 나는 팀명이었다. 정말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책을 읽으며 ‘안놀면 뭐하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나의 playful life의 계획은 ‘안놀면 뭐하니’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가족과 캠핑하러 다녔었다. 자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래서 남편과 긴 상의 끝에 스타렉스를 개조한 캠핑카를 구입하기로 했다.
편안한 삶이 좋았던 나는 사실 캠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다니다 보니 캠핑의 묘미를 알아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과 제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시기여서 나름의 큰 결정을 내렸다. 옆에서 친정엄마가 ‘우리 짠순이 큰맘 먹었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독박’이란 화투 놀이에서 한 사람이 벌칙을 모두 뒤집어쓰는 일을 가르쳐 부르는 말이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 육아는 벌칙으로 통용된다. 지난 18년 동안 나의 커리어 전부와 바꿔 그 벌칙(?)을 수행했다. 상담실에 근무하며 부모 교육에 참여한 일이 있었는데, 주최측의 부탁으로 애착과 뇌과학을 공부하며 육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9년 불임 부부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를 품에 안고, 스스로 전업주부가 되기로 선언했다. 그렇게 나는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지금까지 소위 가사노동을 주업으로 삼고 틈틈이 책을 번역하고 강의를 하며 나다운 삶의 결을 만들며 살아왔다. 그러나 주위의 이해를 받기는 녹녹치 않았다. 특히 돌아가신 부모님의 눈에 나는 답답한 존재였다.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나왔으면서 김치 담그는 법, 된장 담그는 법을 묻는 아들이 어머니는 늘 못 마땅 하셨다. 그런데 그 불편한 눈초리는 나만 받아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또 그 눈초리의 원인은 우리 엄마의 생각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 일은 산업혁명 이후 ‘그림자 노동’에 종사해온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초였다. 딸아이 천 기저귀를 손빨래하고 옷걸이에 걸어 너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는 ‘자기 몸을 불태우는 사람 같다’고 했다. 막상 전업주부를 선언했지만, 매끼니 설거지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하면 비난이 쏟아질까봐 이를 악물로 했다. 공부를 하는 것처럼,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열심히 했다. 사실 그것은 투쟁에 가까웠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한.... 그런데 최근 먼 나라에서 나보다 더 일찍 나와 같은 투쟁의 반열에 오른 동지를 만났다. 실비아 페데리치, 그녀는 내 머리 속에서 부유하던 생각들을 ‘재생산 노동’이란 한 단어로 요약해주었다. 너무도 감사했다.
남성중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떠받치는 돌봄, 자연, 여성이란 재생산노동은 늘 하류로 취급받았다. 재생산노동이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시키는 필수 요소임에도 돈으로 환산될 수 없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는 이 재생산노동을 무가치하게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여성이 돌보는 아동, 아동이 하는 놀이는 당연히 하찮게 취급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아동의 인권이 침해받는 근본원인은 놀이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나, 놀이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재생산노동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이 때문이다.
돈이 삶의 주인이 된 사람에게 가사 노동, 돌봄, 아동, 놀이는 늘 뒷전으로, 필수가 아니라 선택사항으로 밀려 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돈으로 환산되어야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재생산노동이 없으면 인간은 다음 세대를 보전할 수도, 다음 날 아침 일터에 나갈 수도,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그 노동에 근거해서 경제를 운영하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맡기고 그 결과 위에서 경제를 운영하고 이익을 취한다. 서구 사회는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논하고, 가사노동을 복지혜택의 틀 안에서 보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놀이운동은 다른 말로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운동이다. 재생산노동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회복시키는 페미니즘 운동이기도 하다.
내 삶의 도화지를 채우는 물감, 붓, 밑그림을 그리는 연필, 지우개는 따로 있다. 연필과 지우개는 아내와 딸이고, 물감과 붓은 음식, 가구, 집, 만남이다.
아내와 딸은 자기 삶을 자신의 색깔과 방식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등학생이 된 딸은 1년 넘게 자신만의 그림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 천 번 습작을 그리는 모습을 봤다. 너무 힘들어하며 포기하고 싶어하면서도 결국 맘에 드는 눈을 찾아내면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코, 얼굴 형태, 팔, 다리가 완성되어 지금의 오토가 탄생했다. 단순해보이지만 한눈에 예쁘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딸아이는 그 캐릭터를 저작권 등록을 하고, 사업을 해보겠다며 사업자 등록을 냈다. 그리고 권리 보호를 위해 상표권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딸에게는 꿈이 있다. 굿즈 샾을 열고 사람들을 고용해서 회사를 차리겠다는... 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딸이 그린 밑그림에 색깔이 하나 둘 입혀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난 내 일처럼 기쁘고 즐겁다. 왜냐하면 딸아이의 성과에는 내 그림자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온갖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에게 주문하면 나는 그것들을 대부분 만들어 준다. 그 밥 힘으로 딸은 꿈을 꾸고 밤을 새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딸아이의 진보 속에는 내 요리 실력의 진보, 나와 맺는 관계 깊이가 숨어 있다.
딸은 자기 실력에, 삶에 조금의 진전이라고 생기면 자랑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다. 책상 앞으로 나를 불러 세우고 새로 만든 디자인을 보여주며 한 참을 설명해준다. 인쇄 업체를 찾아 샘플을 주문하고 맘에 드는 업체를 찾았다면 과정을 설명해준다. 그러면 나는 ‘잘하는 구나!’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니!’ 추임새를 넣고, 귀 담아 잘 들어준다. 대충 듣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진심으로 기뻐하며 들어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도 어릴 적 어른들에게 가장 받고 싶었던 것은 돈이나 선물이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인정해주는 것이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인정은 잘 한다는 말보다, 눈빛, 태도에 더 묻어난다.
어른이 우쭐하면 그건 소위 ‘자랑질’이 되고 그 모습은 밉상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랑하는 만큼, 그 자랑을 받아주는 만큼 성장한다.
아내도 몇 달 전부터 무슨 각성을 했는지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2시간을 함께 걸어가 맘에 드는 만년필을 구입했다. 캘리그라피에 빠져 틈만 나면 하얀 도화지에 이런저런 글씨를 디자인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두 여인은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계시다.
그리고 시흥에서 놀이운동을 하며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도화지 삼아,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삶의 여정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요즘은 그 모습에 전염된 사람들이 새로운 변종들을 탄생시키고 있는데 그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 속도라면 줄세우기 경쟁교육이란 필요악(약)은 효과가 점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여인 또한 집에 있으면 음식 주문이 만만치 않다. 과연 무슨 힘으로 자신이 살아가는지 알고 있을까? 물론 알겠지... 모르면 죽는다. 하하
이 여인 또한 수시로 나에게 찾아와 말을 건다. 요즘은 새벽이면 찾아와 ‘어제 몇 시에 잤냐, 그 정도면 많이 잤다. 일어나서 내가 쓴 글 좀 들어봐라.’ ‘헐~~~’ 그럼 내가 할 일은 잘 들어주는 것. ‘그래 당신 말이 옳다.’ 맞짱구 쳐주는 것. ‘이런 죽일 놈!’ 하고 같이 육두문자를 날려주는 것. 그러고 보니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가보다. 물론 사람을 가려서 하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올 해 내가 꿈꾸는 플레이플 라이프는 이런 삶이 우리 가정을 넘어 시흥의 지역사회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려고 한다. 같이 꿈꾸고, 같이 삶을 만들어갈 사람들을 찾아 시작해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해보이지는 않는다. 많이 보다 깊이, 진짜로, 철저하게 알고 교류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도 성장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 위에 내 삶을 단단하게 세워나가고 싶다. 내가 100살 정도는 살 것이니까 앞으로 40년을 더 써야 하니 기초를 단단하게 세우고 싶다. 이것이 올 해 내 삶을 도화지 삼에 그리고 싶은 플레이플 라이프다.
엄마, 이것 좀 해줘 엄마, 엄마~~ 난 엄마이다. 삶의 한 부분으로써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나의모습중 하나이다. 엄마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크다. 인생의 대 혁신이자 돌이킬 수 없는 길 엄마라는 삶, 이 단어가 주는 행복함, 달콤함 ,기쁨도 있지만 ,지겨움, 싫음, 자유롭고 싶다 등 여러 생각도 들게하기도 하구 감정이 생기게도 한다. 삶에 대해 폭과 깊이가 생기게도 한다. 수많은 기회가 생기기도빼앗기기도 하는 것 앞으로도 쭉 나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엄마로써의 삶 한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처럼 즐겨보도록 해야겠다. 놀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것
이라는 보통의 생각이었지만놀 줄 아는 분들을 만나 생각이 전환되었다.놀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 좋아서 흠뻑 빠져서 하는 것 플레이 스타터 시민양성과정을 통해기초 설계하는 과정을 하면서 어릴 때 놀았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했었고 중요성도 알게되구 놀 줄 아는 동무들도
만나는 기회였다면 워커2기과정은 기초위에 뼈대를 세우듯 튼튼하게 혼자서 힘들게가 아닌같이 타협, 여럿이서 함께 해 나가는 것이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학교는 모퉁이 튼튼한
반석이 되어가는 다듬어 지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계속 놀이동무들과 함께 하다보면 주변에
있는 남녀노소 놀이와 친구가 되어 가는 길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 들이 될 것 이다.
글쓰기 학교에서 2021년 PLAYFUL LIFE 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본적이 있다.그때 그림으로 표현해서 나타내었는데 생각해 보는 시간이 짧게 주어졌지만 평소에 마음속에 있었나 보다 금방 그려졌다. 먼저 가족이 그려졌다. 아이들하고 함께 하려고 해서 어딘가를 가는 거였지만 집 근처나 공원 등 자연이 가까이있는 곳을 찾아 걷는 것이다.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여러곳을 다니기 쉽진 않지만 근처 자주 갔던 곳이라도 함께 가면 좋아하니 가족과 함께 평범하지만 일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한 부분이다.다른 나의 라이프는 공동육아이다. 우연한계기로 시작된 품앗이모임이다. 3년 가까이 만나다 보니 가족끼리도 뭉쳐서 함께 활동하구 하다 보니 편한한 모임이다. 함께한 추억도 많다 아쉬운 건 같은 동네가 아니기도 하구 직장 생활 하는 엄마들도
있어서 평상시에는 자주 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더욱이 작년에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으로 진행되어 카톡 으로 자주 연락만 하다 며칠 전에 옥구공원에 모여서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하구
이곳저곳을 뛰며 놀면서 해가 지도록 놀았다. 엄마들도 밀린 수다를 떠느라집에 가기
아쉬워하였다. 오랜만이었는데도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그 동안 주말에 함께 했던 시간들이 허사는 아니었다. 역시 추억을 함께 간직한 사이는 끈끈하구나 . 앗싸 좋아부려
올해는 코로나가 진정되어서 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도 만나서놀기도 했다. ㅋㅋㅋ 역시 만나서 놀아야 제맛 이구나 재미있고 신나게
놀아보자구 .내가 라이프 그림 중 자수도 있었다. 어릴 때 엄마가 주황색 실을 풀어서 뜨개질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뭐든지 음식도 여러 가지 뚝딱 잘하시는 엄마이셨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평소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내가 된것 같다. 만들기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재미있겠다 생각이 먼저든다. 다 실천해 볼 수 없지만 그 중에서 자수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왠지 바늘, 실 등 준비해야 하구 간단하지 않아 관심만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작년에
드디어 빠져 들게 되었다. 코로나가 나에게 기회가 된 것이다. 코로나로 힘들게도 했지만 시간적 여유와 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집콕이 이어지다 보니 나만의 스트레스 타파가 필요했다.
자수가 생각났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한땀 한땀 하다보니 시간이 2~3시간 가도 시간이 간 줄
모르고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고 나면 저녁에 기회가 주어지면
틈틈이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중 할 수 있어 좋았다. 완성의 뿌듯함이 덤으로 주어졌다.
요즘은 플레이 스타터 글쓰기 학교 및 집콕 모험 놀이터모임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자수를 놓고 싶어도놓을 수 없지만 내가 플레이 스타터 모임을 하는 것도 또 다른 PLAYFUL LIFE 중 하나다.
달라기 시합에서 처럼 워커2기모임이 출발신호처럼 땅 하고서 시작 되었다.그 이후로 계속
모임이 이어져 지금 글쓰기 학교에 까지 참여하고 있다. 내 시간을 들여서 까지 하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재미있어서다.
사람들과 비대면으로 만나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들을 이야기 나누것들이귀하다.
같은 것을 보아도 생각이 너무 다름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깨달아 진다. , 이것이지 하면서 좁게 보였던 것들이 생활 속에 것들이 이야기 나누다 보면 이렇구나 저렇구나 하면서 다른 시선으로 보아지니 더 여유롭게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 간의 모임이라 쉽지만은 않지만 그것 또한 좋다. 가치있다 여기는 것들에 대해 같이 바라보며 나아가는 플레이 스타터 모임에
참여한다. 올해도 언제 까지 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처한 상황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지치지
않게 참여해 갈것 이다. 2021년 PLAYFUL LIFE그림을 통해 나의 삶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글을 쓰다 보니 한해를 어떻게 생활해야할지 정리되어지며 다짐을 해보게 된다. 글을 쓰기 전에
아 진짜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알고 너도 알고 우리가 모두 아는 놀이가 많아질 수록 더더더 행복할 듯 ㅋ 아...저는 친구들을 불러 막춤을 추었던 그 조그만 방이 기억이 나고 친척동생들이 아기오리들처럼 쪼르르르 따라오면 "언니~ 놀자"했던 그 기억이들이 소환되네요... 놀고싶다...ㅎ
"우리의 시대를 지배하는 비유는 농업이 아니라 공업에서 나온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는 우리는 인생을 기른다grow가 아니라 만든다make고 믿는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모든 것을 만든다는 문화의 오만한 자신감에 젖어 있다." (파커J파머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pp182-183)
오래 전, 귀농을 했을 때 논농사, 밭농사를 지으며 농부가 농사에서 하는 역할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만 그 일은 전체 농사의 백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역할이다.
결실은 씨앗과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그 사실은 농사를 지어보면 안다. 농사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농사는 씨앗에 있는 생명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며 때가되어 땅과 자연이 만든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 중에 인간의 개입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마치 인간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생명은 그렇게 성장한다.
작은 씨앗뿐 아니라 인간이란 생명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엘리트로 만든다는 착각 때문에 우리는 인간을 더욱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인간을 키운다면, 돌본다면 인간은 자기 결대로 온전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부모인 우리가 할 일은 지켜보며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 곁에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 처럼 때로는 엄마인데 이기적인가 하면서도 내 자신도 필요하기에 혼자의 놀이를 하는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세 번째
-PLAYFUL LIFE-
제목 : 나를 찾아가는 시간
이름 : 정나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매순간 걱정과불안 속에서 난 그 테두리 안에서 날 가둔 게 아니였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름 나의 육아스타일을 찾아가면서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뭔지 모를 걱정과 불안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육아에 몰두해 있던 나는 나를 잊고 살았던 거 같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나는 무얼 하고 살아왔을까?
내 곁에 꼬맹이들은 벌써 9살,7살 누나, 형아가 되었고,두 개 먹은 사람 없고 하나 먹지 않은 사람 없이 하나씩 다 먹는 세월에 맞추어 늙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살아가고픈 사람이었는지 이제 점점 기억도 희미해지고 내가 점점 사라지고 두 아이의 엄마, 적당히 타협해서 흘러가는 시간들 생산적인 일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뭔가 중요한 걸 계속 놓치는 느낌이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았을거다.
벌써 플레이스타터와 울고 웃으며 어느덧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무언가의 끌림으로 여기까지 왔다. 묘한 이끌림이랄까?
기본과정에선 아이와 노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놀이는 교육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 머리로는 알겠는데 행동으로 실천 하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놀이에서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주었고
그렇게 아이들로 인해 배움으로 가득차고 성장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던 시간들이 너무 감사했다.
기본과정에서 아이와 내가 연결이 되었다면
워커 2기 과정과 집콕 모험 놀이터는
놀이보다도 종종 나를 잊고 살았던 나를 알아가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비난하고
사회에 나오면 칭찬보다는 지적받을 일이 투성인데
나 자신까지 나를 지적하고 상처를 주고 있는 거 같다.
육아를 하면서 부모가 아니 내가 지치기 이전에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순 없지만 조금씩 찾아가며 알아주고 다독여줘야겠다.
나와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은 나인데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는지....나를 사랑하는지.
우리 꼬맹이들을 보듯 나를 내가 아껴보아야겠다.
재재 이태경의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로 놀이를 다시 만나다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도서관에서 주말에 있을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핸드폰에 진동이 울려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막내야! 엄마가~” “엄마가 왜!” “엄마가 돌아가셨어! 얼른 짐 챙겨서 나와!” 그리고 나는 춘천으로 가는 언니의 자가용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엄마를 떠나 보내야 했다.
그날 나도 언니들과 엄마 보러 병원에 갔었더라면!
엄마는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져 응급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언니들은 월요일에 시간을 내어 춘천의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엄마를 보러 간 것이다. 그날 영상통화에서 “엄마 나 이번 주 일요일에 시험 끝나면 엄마 보러 갈게! 기다려!” 엄마는 기다리겠노라고 약속하고는 그렇게 가버리셨다. 엄마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삼우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몹시 아파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산부인과에 방문하여 검진결과 임신 3주 정도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둘째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날 얼마나 혼란스러웠었던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잃은 슬픔을 정리하기도 전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려 애써 즐거운 척 행복한 척하려 애썼지만, 또다시 나에게 찾아온 여러 가지 시련들로 힘들었던 나는 매일 매일 기도했다. 뱃속의 태아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행히 둘째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약간의 잔병치레를 했지만 잘 자라 주었다.
2016년 어느 날 놀이밥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란 강의를 듣게 되었고, 이후에 나는 건강한 놀이 문화 확산을 위해 플레이스타터가 되었다. 2021년 현재 돌이켜 보니 놀이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쏟았구나~ 우리가 함께라서 가능했던 것이겠지.
이번 글쓰기 학교는 어쩌면 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대표로 서의 책임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역시나 녹록지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으로 만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줌으로 만나 수다 떠니 좋기는 하다. 늘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글쓰기 학교에서 선정한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개정판을 읽으며 놀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왜 플레이스타터로 아직 남아있는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어느순간 나는 지난 2009년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했던 맹세가 생각났다. 둘째가 태어난 후 문득문득 들었던 생각이었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늘 고민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난 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조금은 더 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조금은 더 괜찮아! 할 줄 알며, 조금은 더 그럴 수 있어!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예뻐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놀이를 지지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우와! 멋진데! 난 잘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맹세를 잘 지키고 있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번 글쓰기는 어쩌면 내가 놀이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양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시간이 생각나네요... 벌써 2년이 지났어요.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편의 글을 다 올려 주셨군요... 역시 모범생은 달라... 하하하 고맙습니다^^
<내가 놀이를 만나게 된 순간>
좋은 엄마가 너무나 되고 싶었던 나는 언제나 열정뿜뿜이었다. 육아휴직을 결정하면서 아이에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동네에 문화센터 수업은 다 들으러 갔고, 좋은 체험전이나 교육이 있다고 하면 발벗고 나서 참여했다. 품앗이 육아도 하며 아이를 정말 잘 놀아주는 엄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난 순간부터는 잘 놀아주는 엄마의 일상은 이어질 수 없었다. 내 욕심껏 아이들에게 해주려니 정말 힘들었다. 체력도 따라 주지 않았다.
아이맘카페에서 팝업놀이터가 열렸다. 어린 둘째를 안고, 첫째 아이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어 가게 되었다. 스스로 ‘잘 놀아주는 엄마’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날은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친구 엄마가 요구르트를 건네주었다. 아무 생각없이 둘째에게 먼저 주었고 첫째는 울음이 터졌다. 그 순간 아이가 왜 이렇게 우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아이는 계속 울었고 나는 집에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라는 마음이 삐죽하게 올라왔다. 온 김에 재미있게 놀고 가고 싶은 엄마 욕심이었다.
내 마음은 불편했지만, 끝내 아이는 정말 즐겁게 놀았다.
놀아주는게 아니라, ‘같이 노는’거였다. 나의 주도로 노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놀이를 잘 관찰한 뒤, 모방하고 칭찬하는 과정으로 아이와 같이 노는 것이 진정한 놀이였다.
오명화 선생님께서 우선 아이의 놀이를 잘 바라보라고 하셨다. 아이는 종이테이프를 길게 늘이며 여기저기에 붙이고 놀았다. 나는 아이의 놀이를 따라했다. 같이 종이테이프를 길게 늘여뜨려 붙였다. 아이는 정말 즐거워했다. 어느 정도 테이프를 늘이고 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저 테이프 비싼건데.. 우리 아이가 여기있는 테이프 다 쓰겠네...’
아마 이전같았으면 “이제 그만할까?”라고 테이프 사용을 막았겠지만, 배운대로 관찰+모방+칭찬을 위해 꾹 참았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만큼 테이프를 늘이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른 놀이에 참여했다.
그날 뵙게 된 오명화 선생님께 완전 반하고 왔다.
‘놀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오명화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고 연락드리며 얼마나 떨렸는지...
플레이스타터 교육에도 참여하고 싶지만, 일하는 시간과 겹쳐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생님께서 방학 동안 플레이스타터 모임에 참여해도 좋다고 흔쾌히 얘기해주셔서 정말 값진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아니 두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뭘 좋아해요~?” 라고 묻는데 도무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태껏 사회에서 요구되어서지는 목표를 쫓느라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제야 내 꿈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일이 꿈이라는 이야기에 내 삶에 귀 기울이며 ‘내가 좋아하는게 뭘까?’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만난 ‘놀이’
나는 놀이가 참 좋다. 그 놀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오명화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면서 놀이의 가치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놀이를 배우는 중이다. 이것이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오명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다.
바로 놀이를 만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내 삶과 우리 아이들의 삶에 분명히 큰 빛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놀이를 공부하게 되면서 두 아이의 육아가 정말 많이 편안해졌다. 놀이라는 것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어른도, 청소년도, 어르신도 모두의 삶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행복의 핵심은 ‘좋은 경험’에 있다. 그 시간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고,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을 안겨줄 수 있는 경험 말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좋은 경험을 찾아내고 이를 늘려가는게 중요하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기쁘고, 기다려지고,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경험이란 놀이와 유사하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행복한 건 잘 놀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더라도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고 발달시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휴식이다. 잘 놀아야만 활기가 생기고 재충전이 이루어진다.
출처 : <오티움> p37
내 인생에서 놀이를 만난 그 순간. 나는 그 순간부터 활기가 생기고 재충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의 인생에 행복을 선물해주었다.
<놀이의 기쁨을 느끼며, 놀이로 하나 되는 우리>
오랜 육아휴직 후 복직한 학교에서 정말 오랜만에 담임교사를 맡게 되었다. 아이들과 만나기 전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며, 다시 신규교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플레이스타터에서 놀이에 대해 배우고 나서, 교사로서 ’놀이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사례를 만들어 1년간 운영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내 눈에 번쩍 들어온 ’꿈꾸는 교실 프로젝트 공모전
나는 놀이프로젝트로 꿈실공모전에 참여했다. 운좋게 우리 학년이 채택되었고, ’놀이로 하나 되는 우리, 놀이의 기쁨’을 주제로 4학년 아이들과 1년 동안 놀이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처음 계획서를 낸 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상황이 바뀌어 재차 계획서를 수정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놀이로 하나가 되는 시간을 꼭 가지고 싶었는데 등교일 수가 얼마 되지 않아 비대면, 비접촉놀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기로 했다.
온라인 수업만 가능한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슬기로운 집콕놀이‘를 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다양한 놀이를 소개하고 개인 놀잇감을 배부하여 각 가정에서 놀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보려 했다.
놀이꾸러미를 배부하여 각자 집에서 놀이하고, 스스로학습장에 하루생활 글쓰기로 놀이한 소감을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등교해서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추어 비접촉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해 아이들과 놀이시간을 가졌다. 신체활동이 사라진 아이들, 학교에 와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신체활동을 해보자고 결정했다. 발목줄넘기를 구입해 개인 배부하였다. 그리고 필로티에 모여 거리유지 후 함께 발목줄넘기를 하였다. 여름방학에도 가정에서 발목줄넘기를 활용하여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어찌나 즐겁던지. 이후로도 춤신춤왕과 같은 비접촉놀이를 했다. 체육과 음악교과와 연계하여 음악에 맞추어 난타연주도 해보았다.
코로나19 상황이 진행될수록 아이들과의 온라인 수업은 익숙해지고 있었다. 매주 진행되는 실시간 화상 수업에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 참 좋았다. 플레이스타터에서 했던 온라인 팝업놀이터를 학급 아이들과 해보아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우리만의 놀이모임 시간을 가져보았다. 각자의 집에서 같이 놀기! 미리 나누어주었던 탭볼을 랜선에서 만나같이 해보기로 했다.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던 그 순간. 잊혀지지가 않는다.
‘틈’과 ‘터’,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과 또래를 먼저 보고 가장 나중에 놀이를 보아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놀 거리가 없어도 놀 틈과 놀터와 놀 또래만 있으면 아이들은 논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놀지 않는 까닭은 전래놀이 같은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놀 것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놀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출처 : <아이는 놀이가 밥이다> p69
아이들에게 놀이밥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달았다. 대단한 놀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착각했다. 아이들은 랜선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누기만 해도 웃음이 끊이지가 않았다. 팝업놀이터를 위해 나누어주었던 탭볼은 놀이밥을 거들뿐 우리의 놀이에 중심이 되진 않았다. 그저 놀시간, 놀공간 그리고 같이 놀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야 하는 상황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이렇게라도 만나서 같이 놀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졌다.
작년은 정말 더 휘리릭 지나간 기분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즐거움과 기쁨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놀이로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나의 playful life는?>
신년 계획을 세우는 건 익숙하지만, 놀이로 가득한 삶의 계획이라니! 역시 플레이스타트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나를 설레게 한다.
올해 어떻게 놀지 생각하는 시간! 낯선 계획이었지만 그 상상만으로도 참 즐거웠다.
#무계획
작년, 2020년은 정말 몰아치게 열심히, 애쓰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무계획’을 모토로 즐겨보고 싶다.
무엇을?
그건 아직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를 기쁘게 하는 순간들을 만끽하고 싶다. 백지상태인 나의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되어 진다.
#내 삶에 귀 기울이기
나와의 대화가 이렇게 재밌는 건 줄 이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무작정 사회의 요구에 맞춰 사느라 나 스스로에게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책을 읽으며 내 삶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자꾸만 내 마음에, 내 감정에 귀 기울여주고, 질문해주며 나만의 답을 찾는 과정이 참 즐겁다. 나 찾기의 그 즐거운 여정을 우리 아이들과도 나누고 싶다.
#안놀면 뭐하니
‘놀면 뭐하니’ 프로그램을 정말 재밌게 보았다. 그런데 플레이스타트 글쓰기학교 같은 조 분들의 팀명이 ‘안놀면 뭐하니’ 였다! 듣자마자 웃음이 나는 팀명이었다. 정말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책을 읽으며 ‘안놀면 뭐하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나의 playful life의 계획은 ‘안놀면 뭐하니’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가족과 캠핑하러 다녔었다. 자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래서 남편과 긴 상의 끝에 스타렉스를 개조한 캠핑카를 구입하기로 했다.
편안한 삶이 좋았던 나는 사실 캠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다니다 보니 캠핑의 묘미를 알아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과 제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시기여서 나름의 큰 결정을 내렸다. 옆에서 친정엄마가 ‘우리 짠순이 큰맘 먹었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원래도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 같다.
#드림크루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만남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작년 자람패밀리에서 부모성장지원가 과정을 배우며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분들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바라보고,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랄까.
작당해서 재미나게 놀고픈 사람들과 올해 또 신나게 놀아보고 싶다.
#너그럽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내자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놀이 교육, 부모성장 교육들로 내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허용하고자 마음먹었지만, 실시간 화상 수업으로 비대면발레, 비대면영어, 비대면미술 등을 하는 지인들을 보며 마구 흔들렸다.
‘아이는 시간이 아주 많다. 왜들 뭐든지 일찍 시작해서 아이와 관계를 그르치고 돈은 돈대로 쓰고 마음과 영혼과 몸을 망가뜨리려는 것일까. 조기교육이나 적기교육 대신에 나는 ’놀면서 기다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아이에게 자유와 놀이를 허용하고 허용하고 허용할 때다. 너그럽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내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부족함을 느낀다면 유머러스 정도를 추가하자. 아이와 함께하는 지내는 데 이 세 가지면 정말 부족함이 없다.
출처 : <아이는 놀이가 밥이다> p113
책 속 이 문구를 보는데 참 위로가 되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데 너그럽고, 단순하게, 유머러스면 충분하다는 말! 올해 아이들과 너그럽고 단순하게 놀고 싶다. 이제는 조바심 내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깐.
세 번째 - PLAYFUL LIFE
제 목: 일상에서의 놀이
이 름: 이연희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라는 책을 조별로 이야기 나누기를 할 때에 일상에서의 생활이
놀이이다는 말을 실감하는 때이다. 둘째아이가 ‘엄마 , 내가 설거지 해 볼래 ’ 라는 말에 그래
해봐 하면서 기회를 주었다. 다하고 나면 물도 튀고 뒷정리가 힘들텐데 하는 마음이 한켠엔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생각보다 잘했다.
덕분에 편했다. 내가 청소기 돌릴래, 걸레질도 할래, 재활용 분리수거하려 갈 때도 같이 가서
하고 , 수건도 개고, 예전에는 그닥 관심이 덜했던 아이가 신기하게도 글쓰기 하는 동안 일상에서 한다고 하구 기회를 주고 했더니 아이가 즐거워하면서 하는 모습을 보고서 ‘아 내가 귀찮다고 하면서 기회를 주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요즘 집콕 모험 놀이터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도 돌아보니 아이에게 걱정된다는 이유로 컷터 칼, 바늘을 사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아이에게 기회를 막고 있었구나 하면서 상자자를때, 평소에 내가 한던 바느질을 보면서 엄마, 나도 해보고 싶어 했을때, 위험하고
알려주려니 귀찮다는 이유로 못하게 했는데 기회를 주니 아이는 조심해서 사용하였다.
바느질도 재미있어 하였다. 괜히 나의 걱정 때문에 아이의 할 수 있는 힘을 몰랐구나.
첫째아이는 아직은 겁이 난다고 칼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 아이가 원할 때 허용하자.
내 걱정은 접어두고 조심해야할 사항을 알려주고 옆에서 지켜보며 사용할 수 있게 하자.
앞으로 어떠한 놀이들이 형태, 기회로 올지 모르겠지만 배우고느낀 것들을 잊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해 나가야겠다.
두번째
-FLAYFUL LIFE-
제목 : 추억속으로
이름 : 정나선
요즘 나는 어렸을 때 놀았던 추억들과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 등
그전엔 그땐 그랬었지??라고만 생각했던 추억들이 요즘은 집콕모험놀이터를 하면서
더 깊게 추억에 빠져있다.
다음날 집콕모험놀이터를 준비하면서 예전 만화 주제곡을 들으면서 설거지를 하는 내내
아이들과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혼자 중얼중얼 따라 부르는 것 마저 쉽지가 않다.
아이들은 처음 듣는 노래이기도 하고 “무슨 노래야”로 시작해서
아이들은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나보다….
“엄마 근데 왜 둘리나 하니는 엄마를 찾아?? 만났어???등 수없이 많은 질문과 답변들이 오간다.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이들이 나의 추억을 강제소환해주는 듯하다.
추억을 다시 되짚어보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동네였다.
플레이스타터 기본과정을 하면서 들었던
“한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추억 중심엔 항상 부모님이 계셨다.
날씨가 많이 춥기도 하고 요즘 내 체력이 떨어져서 바깥활동이 많이 줄었다.
오늘도 내 몸이 편한 생활만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반성한다.
모험놀이터를 하면서 그림일기 시간에 가족과 단 한번의 여행을 갔던 분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나 또한 아이들과 추억을 쌓고 좋은 추억을 더 많이 쌓기 위해서
난 우리 만의 “가족의 날”&”놀이의 날"을 정하려고 한다
놀이운동의 확산이 왜 어러운지 더 정확히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솜사탕님... 18년간의 전업주부 역할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감당해 주신 것... 존경합니다.
플레이플 라이프가 되지 않는 원인을 알았어!
한국에만 존재하는 육아를 묘사하는 독특한 수식어가 있다.
‘독박~’
‘독박’이란 화투 놀이에서 한 사람이 벌칙을 모두 뒤집어쓰는 일을 가르쳐 부르는 말이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 육아는 벌칙으로 통용된다. 지난 18년 동안 나의 커리어 전부와 바꿔 그 벌칙(?)을 수행했다. 상담실에 근무하며 부모 교육에 참여한 일이 있었는데, 주최측의 부탁으로 애착과 뇌과학을 공부하며 육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9년 불임 부부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를 품에 안고, 스스로 전업주부가 되기로 선언했다. 그렇게 나는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지금까지 소위 가사노동을 주업으로 삼고 틈틈이 책을 번역하고 강의를 하며 나다운 삶의 결을 만들며 살아왔다. 그러나 주위의 이해를 받기는 녹녹치 않았다. 특히 돌아가신 부모님의 눈에 나는 답답한 존재였다.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나왔으면서 김치 담그는 법, 된장 담그는 법을 묻는 아들이 어머니는 늘 못 마땅 하셨다. 그런데 그 불편한 눈초리는 나만 받아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또 그 눈초리의 원인은 우리 엄마의 생각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 일은 산업혁명 이후 ‘그림자 노동’에 종사해온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초였다. 딸아이 천 기저귀를 손빨래하고 옷걸이에 걸어 너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는 ‘자기 몸을 불태우는 사람 같다’고 했다. 막상 전업주부를 선언했지만, 매끼니 설거지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하면 비난이 쏟아질까봐 이를 악물로 했다. 공부를 하는 것처럼,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열심히 했다. 사실 그것은 투쟁에 가까웠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한.... 그런데 최근 먼 나라에서 나보다 더 일찍 나와 같은 투쟁의 반열에 오른 동지를 만났다. 실비아 페데리치, 그녀는 내 머리 속에서 부유하던 생각들을 ‘재생산 노동’이란 한 단어로 요약해주었다. 너무도 감사했다.
남성중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떠받치는 돌봄, 자연, 여성이란 재생산노동은 늘 하류로 취급받았다. 재생산노동이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시키는 필수 요소임에도 돈으로 환산될 수 없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는 이 재생산노동을 무가치하게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여성이 돌보는 아동, 아동이 하는 놀이는 당연히 하찮게 취급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아동의 인권이 침해받는 근본원인은 놀이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나, 놀이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재생산노동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이 때문이다.
돈이 삶의 주인이 된 사람에게 가사 노동, 돌봄, 아동, 놀이는 늘 뒷전으로, 필수가 아니라 선택사항으로 밀려 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돈으로 환산되어야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재생산노동이 없으면 인간은 다음 세대를 보전할 수도, 다음 날 아침 일터에 나갈 수도,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그 노동에 근거해서 경제를 운영하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맡기고 그 결과 위에서 경제를 운영하고 이익을 취한다. 서구 사회는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논하고, 가사노동을 복지혜택의 틀 안에서 보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놀이운동은 다른 말로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운동이다. 재생산노동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회복시키는 페미니즘 운동이기도 하다.
두 번째 - PLAYFUL LIFE
제 목: 놀이 밥 먹으러 가자 ~ 뚜벅 뚜벅, 쌩쌩쌩~~~
이 름: 이연희
매일 매일 놀이 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책을 끝마치며 활자로 읽는 것들이 놀이밥 을 먹으면서 와 이것이구나, 맞네 맞아 그런
글이었구나 하면서 깨달아 지고 고개가 끄덕여 진다.
우리는 뚜벅이다. 나와 아이들은 주말에 신랑이 쉬는 날이 아니면 그 외의 날 에는 걷거나 퀵보드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면 웬만하면 뚜벅 뚜벅 걷거나 쌩쌩쌩
퀵보드와 단짝 친구가 되어 대부분 이동한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부터 걸어서 이동하다보니 익숙해져서 인지 웬만큼 걸어서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고 달리고 걷고 퀵보드를 타고 잘 따라 다닌다. 추운 때, 더울 때는
차가 많이 그리워지긴 하지만 걷다보니 얻어 지는 게 더 많다. 주위의 풍경도 볼 수 있고 아이들과 자연의 변화도 신기해 하며 감탄하며 이야기 나누며 동네의 지리도 이곳저곳 연결된 것도 알고 사람들도 보고 살아가면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값진 시간을 추억으로 얻었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퀵보드를 타면서 쌩쌩
달리면서 서로 장난도 치거나 웃으면서 자유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사람들 있는 곳은 천천히 달려라, 신호등에서는
내려서 가라는 말을 하면서 신경 쓰이는데 엄마 맘도 모르고 신났다.
그래 너희들이 행복하면 되었지 다른 걱정들은 내가 하마.
요즘 두 아이는 짚 라인에 빠져있다. 숨쉬는 놀이터에서 놀이 후 우연히 발견했던 젊은과 패기
공원에 있는 놀이터 짚라인을 첫 날은 1시간이 넘게 탔다 계속 탔다. 첫째는 예전에 다른 곳에 있는 짚라인이 무섭다고 한 , 두 번탄 이후로는 안타더니 이번엔 보자마자 탔다. 1년도 넘었을 때니 그 사이에 용기가 생겼나 보다.
두 아이는 어찌나 신나하면서 타던지 소리 지르며 지칠 줄도 모르고 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음에 또 짚라인 타러 오자고 해서 며칠 지나서
놀이 공동육아 썬, 써니와 함께 또 타고 다음에 다른 친구랑 2번이나 더 탔었다.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 있은 곳에 가서도 바람 쌩쌩 부는데도 신나게 탔다.
동네 였다면 매일 갔을 것이다. 두 곳 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 매일은
쉽지만은 않다. 그 점이 많이 아쉽다. 그래도 다른 놀이 밥을 편식 없이 먹는
편이라 다행이다. 오늘도 마트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 놀이터를 보고서
눈도 오고 춥고 하니 그냥 집에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지나치지 못하구 발걸음을 향한다. 역시 허용하면 되는구나~~~ 놀이터에 있는
모든 놀이기구를 타고, 달리고 하면서 놀이 밥을 먹고 왔다.
확실히 놀이밥을 먹고 오면 피곤 하지만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이들이 매일 놀이 밥을 먹으려 하나보다. 재미있고 좋으니까 별 이유 없다. 첫째가 놀이 밥 먹으러
가자 하니 놀이 밥 아냐 한다. 밥은 배부른데 놀이는 에너지 쓰니 배고파져 ㅋㅋㅋ 밥 안 먹으면 배고픈 것처럼 놀이도 밥처럼 매일 하는 거야 설명해줘도
이해 못하는 눈치이다. 그래 이해 못하면 어쩌랴 중요한 것은 놀이 밥 먹는 거니까
기회 될 때 까지 놀이밥 먹으러 매일 나가도록 하자구나.
솜사탕 보다는 맛이 없을 수 있지만 ㅋㅋㅋ 기회되면 해 드릴날이 오겠죠^^ 뭐 드시고 싶으세요?
맛있게 요리해주는 요리사가 있어서 좋으네요 저는 제가 요리사가 되어야하니 잘 먹는 모습보면 기분이 좋긴하죠
최재훈의 플레이플 라이프 – 1
내 삶의 도화지를 채우는 물감, 붓, 밑그림을 그리는 연필, 지우개는 따로 있다. 연필과 지우개는 아내와 딸이고, 물감과 붓은 음식, 가구, 집, 만남이다.
아내와 딸은 자기 삶을 자신의 색깔과 방식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등학생이 된 딸은 1년 넘게 자신만의 그림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 천 번 습작을 그리는 모습을 봤다. 너무 힘들어하며 포기하고 싶어하면서도 결국 맘에 드는 눈을 찾아내면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코, 얼굴 형태, 팔, 다리가 완성되어 지금의 오토가 탄생했다. 단순해보이지만 한눈에 예쁘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딸아이는 그 캐릭터를 저작권 등록을 하고, 사업을 해보겠다며 사업자 등록을 냈다. 그리고 권리 보호를 위해 상표권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딸에게는 꿈이 있다. 굿즈 샾을 열고 사람들을 고용해서 회사를 차리겠다는... 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딸이 그린 밑그림에 색깔이 하나 둘 입혀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난 내 일처럼 기쁘고 즐겁다. 왜냐하면 딸아이의 성과에는 내 그림자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온갖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에게 주문하면 나는 그것들을 대부분 만들어 준다. 그 밥 힘으로 딸은 꿈을 꾸고 밤을 새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딸아이의 진보 속에는 내 요리 실력의 진보, 나와 맺는 관계 깊이가 숨어 있다.
딸은 자기 실력에, 삶에 조금의 진전이라고 생기면 자랑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다. 책상 앞으로 나를 불러 세우고 새로 만든 디자인을 보여주며 한 참을 설명해준다. 인쇄 업체를 찾아 샘플을 주문하고 맘에 드는 업체를 찾았다면 과정을 설명해준다. 그러면 나는 ‘잘하는 구나!’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니!’ 추임새를 넣고, 귀 담아 잘 들어준다. 대충 듣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진심으로 기뻐하며 들어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도 어릴 적 어른들에게 가장 받고 싶었던 것은 돈이나 선물이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인정해주는 것이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인정은 잘 한다는 말보다, 눈빛, 태도에 더 묻어난다.
어른이 우쭐하면 그건 소위 ‘자랑질’이 되고 그 모습은 밉상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랑하는 만큼, 그 자랑을 받아주는 만큼 성장한다.
아내도 몇 달 전부터 무슨 각성을 했는지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2시간을 함께 걸어가 맘에 드는 만년필을 구입했다. 캘리그라피에 빠져 틈만 나면 하얀 도화지에 이런저런 글씨를 디자인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두 여인은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계시다.
그리고 시흥에서 놀이운동을 하며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도화지 삼아,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삶의 여정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요즘은 그 모습에 전염된 사람들이 새로운 변종들을 탄생시키고 있는데 그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 속도라면 줄세우기 경쟁교육이란 필요악(약)은 효과가 점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여인 또한 집에 있으면 음식 주문이 만만치 않다. 과연 무슨 힘으로 자신이 살아가는지 알고 있을까? 물론 알겠지... 모르면 죽는다. 하하
이 여인 또한 수시로 나에게 찾아와 말을 건다. 요즘은 새벽이면 찾아와 ‘어제 몇 시에 잤냐, 그 정도면 많이 잤다. 일어나서 내가 쓴 글 좀 들어봐라.’ ‘헐~~~’ 그럼 내가 할 일은 잘 들어주는 것. ‘그래 당신 말이 옳다.’ 맞짱구 쳐주는 것. ‘이런 죽일 놈!’ 하고 같이 육두문자를 날려주는 것. 그러고 보니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가보다. 물론 사람을 가려서 하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올 해 내가 꿈꾸는 플레이플 라이프는 이런 삶이 우리 가정을 넘어 시흥의 지역사회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려고 한다. 같이 꿈꾸고, 같이 삶을 만들어갈 사람들을 찾아 시작해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해보이지는 않는다. 많이 보다 깊이, 진짜로, 철저하게 알고 교류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도 성장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 위에 내 삶을 단단하게 세워나가고 싶다. 내가 100살 정도는 살 것이니까 앞으로 40년을 더 써야 하니 기초를 단단하게 세우고 싶다. 이것이 올 해 내 삶을 도화지 삼에 그리고 싶은 플레이플 라이프다.
첫번째 - PLAYFUL LIFE
제 목: 2021년 PLAYFUL MY LIFE
이 름: 이연희
엄마, 이것 좀 해줘 엄마, 엄마~~ 난 엄마이다. 삶의 한 부분으로써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나의모습중 하나이다. 엄마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크다. 인생의 대 혁신이자 돌이킬 수 없는 길 엄마라는 삶, 이 단어가 주는 행복함, 달콤함 ,기쁨도 있지만 ,지겨움, 싫음, 자유롭고 싶다 등 여러 생각도 들게하기도 하구 감정이 생기게도 한다. 삶에 대해 폭과 깊이가 생기게도 한다. 수많은 기회가 생기기도빼앗기기도 하는 것 앞으로도 쭉 나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엄마로써의 삶 한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처럼 즐겨보도록 해야겠다. 놀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것
이라는 보통의 생각이었지만놀 줄 아는 분들을 만나 생각이 전환되었다.놀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 좋아서 흠뻑 빠져서 하는 것 플레이 스타터 시민양성과정을 통해기초 설계하는 과정을 하면서 어릴 때 놀았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했었고 중요성도 알게되구 놀 줄 아는 동무들도
만나는 기회였다면 워커2기과정은 기초위에 뼈대를 세우듯 튼튼하게 혼자서 힘들게가 아닌같이 타협, 여럿이서 함께 해 나가는 것이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학교는 모퉁이 튼튼한
반석이 되어가는 다듬어 지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계속 놀이동무들과 함께 하다보면 주변에
있는 남녀노소 놀이와 친구가 되어 가는 길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 들이 될 것 이다.
글쓰기 학교에서 2021년 PLAYFUL LIFE 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본적이 있다.그때 그림으로 표현해서 나타내었는데 생각해 보는 시간이 짧게 주어졌지만 평소에 마음속에 있었나 보다 금방 그려졌다. 먼저 가족이 그려졌다. 아이들하고 함께 하려고 해서 어딘가를 가는 거였지만 집 근처나 공원 등 자연이 가까이있는 곳을 찾아 걷는 것이다.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여러곳을 다니기 쉽진 않지만 근처 자주 갔던 곳이라도 함께 가면 좋아하니 가족과 함께 평범하지만 일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한 부분이다.다른 나의 라이프는 공동육아이다. 우연한계기로 시작된 품앗이모임이다. 3년 가까이 만나다 보니 가족끼리도 뭉쳐서 함께 활동하구 하다 보니 편한한 모임이다. 함께한 추억도 많다 아쉬운 건 같은 동네가 아니기도 하구 직장 생활 하는 엄마들도
있어서 평상시에는 자주 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더욱이 작년에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으로 진행되어 카톡 으로 자주 연락만 하다 며칠 전에 옥구공원에 모여서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하구
이곳저곳을 뛰며 놀면서 해가 지도록 놀았다. 엄마들도 밀린 수다를 떠느라집에 가기
아쉬워하였다. 오랜만이었는데도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그 동안 주말에 함께 했던 시간들이 허사는 아니었다. 역시 추억을 함께 간직한 사이는 끈끈하구나 . 앗싸 좋아부려
올해는 코로나가 진정되어서 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도 만나서놀기도 했다. ㅋㅋㅋ 역시 만나서 놀아야 제맛 이구나 재미있고 신나게
놀아보자구 .내가 라이프 그림 중 자수도 있었다. 어릴 때 엄마가 주황색 실을 풀어서 뜨개질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뭐든지 음식도 여러 가지 뚝딱 잘하시는 엄마이셨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평소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내가 된것 같다. 만들기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재미있겠다 생각이 먼저든다. 다 실천해 볼 수 없지만 그 중에서 자수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왠지 바늘, 실 등 준비해야 하구 간단하지 않아 관심만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작년에
드디어 빠져 들게 되었다. 코로나가 나에게 기회가 된 것이다. 코로나로 힘들게도 했지만 시간적 여유와 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집콕이 이어지다 보니 나만의 스트레스 타파가 필요했다.
자수가 생각났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한땀 한땀 하다보니 시간이 2~3시간 가도 시간이 간 줄
모르고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고 나면 저녁에 기회가 주어지면
틈틈이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중 할 수 있어 좋았다. 완성의 뿌듯함이 덤으로 주어졌다.
요즘은 플레이 스타터 글쓰기 학교 및 집콕 모험 놀이터모임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자수를 놓고 싶어도놓을 수 없지만 내가 플레이 스타터 모임을 하는 것도 또 다른 PLAYFUL LIFE 중 하나다.
달라기 시합에서 처럼 워커2기모임이 출발신호처럼 땅 하고서 시작 되었다.그 이후로 계속
모임이 이어져 지금 글쓰기 학교에 까지 참여하고 있다. 내 시간을 들여서 까지 하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재미있어서다.
사람들과 비대면으로 만나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들을 이야기 나누것들이귀하다.
같은 것을 보아도 생각이 너무 다름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깨달아 진다. , 이것이지 하면서 좁게 보였던 것들이 생활 속에 것들이 이야기 나누다 보면 이렇구나 저렇구나 하면서 다른 시선으로 보아지니 더 여유롭게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 간의 모임이라 쉽지만은 않지만 그것 또한 좋다. 가치있다 여기는 것들에 대해 같이 바라보며 나아가는 플레이 스타터 모임에
참여한다. 올해도 언제 까지 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처한 상황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지치지
않게 참여해 갈것 이다. 2021년 PLAYFUL LIFE그림을 통해 나의 삶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글을 쓰다 보니 한해를 어떻게 생활해야할지 정리되어지며 다짐을 해보게 된다. 글을 쓰기 전에
무엇을 써야 막막함과 이것, 저것 생각들이많았지만 나를 돌아보고 삶에 대해 생각해 봐야
다른 것 들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갈 수 있을 것이다. Bravo, my life
첫번째
-PLAYFUL LIFE-
제목 : 놀이의 템템템
이름 : 정나선
필름처럼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들이 지나간다.
엄마이기전 엄마로써의 삶은 내가 경험하기 전 생각했던 것과는
상상이상으로 달랐다.
출산 후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걱정이 제일 큰 걱정이였다.
수없이 많은 육아도서, 인터넷을 접하면서 많이 혼동도 되고
뚜렷한 주관 없이 좋다는것만 따라하다보니 내가 아닌 모습에 점점 힘에 버거웠다.
그래서 주관을 가지고 나의 육아 스타일을 찾아가면서 아이들을 키우기로했다.
그중에서도 변함 없는 나의 육아 방식중 하나는 최대한 늦게까지 많이 놀기다.
그런데 아이랑 놀기보다 놀아주기에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럼 왜 아이랑 놀아주려고 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보았다.
아이와 애착형성을 위해서??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육아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놀이라는 수단에 항상 목마름을 느끼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는 미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와 놀아주는데 왜 미안한 걸까??아이와 나의 세대차이인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와 세대차이가 더 많이 나는
어르신들과 노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니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그냥 말 받아주기...일상생활하기...
아이에게 맞추려 하지 않고 편한대로 놀아주는 사람위주로 놀고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건데 요즘 육아는 정말 신세계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국민템, 육아템등 신기하게 보이는 장난감 투성이다.
그래서 아이들 발달에 좋다는 장난감, 레고 등 좋은 아이템들을 아이 손에
쥐어줘야만 놀 수 있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놀아주는 걸 보면 그냥 손에 잡히는 게 장난감이 되는 거 같다. 아이에게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내가 편한 대로, 내가 아는 놀이를 아이에게 알려주고 편하게 노는 거 같다.
이런걸 보면 놀이는 특별한 무언가가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새롭게 바뀌어가는 놀이문화, 새롭게 생겨나는 수많은 장난감에 나를 맞추다보니 나도 아이도 재미가 없고 점점 지쳐가는 나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놀이를 끄집어 놀게 되면 강제 추억소환이 되어
기분도 좋아지는거 같다.
또 익숙하고 또 능숙하게 아이와 놀 수 있게 되는 거 같다.
비싸고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면 오랫동안 가지고 놀겠지란
생각과는 달리 몇 분 안되서 지치는데 오히려 밖에 나가서 나뭇가지로
칼싸움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등 놀면 아이들이 지치질 않는다.
나도 옛날 생각이 나면서 재미 있어지는거 같다.
내가 어렸을 때 누구에겐가 배우면서 놀았던 놀이들이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고 즐거움을 주는 거 같다.
어렸을 때 놀았던 고무줄, 실뜨기, 땅따먹기 등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 아니지만
그 어느 하나 쉬웠던 놀이는 아닌 거 같다.
다 몸을 쓰고 머리로 기억하고 몸으로 익혀야 하는 나름 연습을 해가면서
몰입해서 놀았던 놀이였던거 같다.
또 놀이를 하면서 만큼은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거 같다.
코로나로 인하여 작지만 가볍게 여겼던 것들을
소중함을 일깨워준 시간이라 생각이 든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을수 있었고 또한 아이들과 놀기 위해선
내가 놀이의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이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주고 즐기면서
아이들의 최고의 놀잇감인 자연과 함께 일상을 즐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