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이도 놀고 우리도 논다면 그것은 자본을 향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의 길에 들어선 것이리라.” (p253)
“기본놀이는 어린이 모두의 보편적 사회적 권리이며 심사나 선별없이 모든 어린이에게 도착해야 할 권리다.” (p326)
2. 느낀 점
딸아이를 키우며 내가 자주 꺼내 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딸아이 나이 때 내 모습’이다. 뭔가 대단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딸아이를 야단칠 때 그 수위가 적당했는지를 살펴볼 때 나는 딸아이 나이에 내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며 내가 얼마나 무모한 요구를 딸에게 하는지 느끼곤 한다. 다시 말해 나도 지킬 수 없는, 지키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는 당연한 듯 요구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소위 ‘날라리’ 였다. 빽바지 교복에 구두를 시고, 심하게 꺾인 U자 뒤집힌 모양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물론 불량 써클에 가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울리는 친구 10여 명이 늘 붙어 다니며 사고도 치고 공부도 같이했다. 그 시절에는 전자 오락기게가 처음 대중화되어 ‘오락실’이란 것이 동네 마다 생겼다. 지금은 그 자리를 PC방이 차지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신나게 ‘갤러그’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부 선생님들이 들이닥쳤다. 나와 친구들 3명은 오락실 주인 방으로 튀어 들어가 이불을 쓰고 들어 누웠다. 밖에서는 우당탕 퉁 탕, 윽 윽... 두들겨 맞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고 있었다.
몇 십분 뒤 바깥은 조용해 졌고, 주인아저씨는 웃으며 이제 끝났다고 알려주셨다. 우린 마치 비밀 기지에 잠입해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나온 특공대원처럼 의기양양하게 밖을 나왔다. 그 긴장감 속에서도 우린 히히덕거리며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 때의 감정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서 나는 일부러 교무실을 들렸다. 교무실에는 어제 오락실에서 걸린 아이들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그 이후로 몇 번 오락실을 가고 발길을 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하러 그런 가슴조리는 일을 내 돈 주고 해야 한단 말이냐’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밖에 나는 말하기 부끄러운 수많은 사고들을 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건강한 인간으로 잘 자랐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 딸을 보며 끝없는 걱정과 불안에 휩쌓일까? 그 때 균형을 잡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내 어릴 적 추억이다.
이렇게 어릴 적 기억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며, 타인을 이해하는 거울이며, 오늘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힘을 조절하는 변속기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은 오늘을 사는 힘이다. 만약 이 기억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득할까? 무엇을 딸아이를 이해할까? 책으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그것은 내 어릴 적 기억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도구, 확신을 위한 지원 사격이지, 타당성과 확신 자체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 참된 자유와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의 의미다. 그처럼 인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다시 말 해 정답만으로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되기 위해 나는 또 우리 아이들은 ‘위험해 보이는’ 경계 주위를 넘나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경계의 존재(위험)를 스스로 익히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인간이 되어가는 길이다.
그런데 딸아이를 야단치며 나는 내 딸이 오류 없는 정답만으로 이뤄어진 삶을 살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류 없이 정답만으로 작동하는 존재는 무엇인다. 우린 그것을 ‘로봇’이라고 부른다. 공부 잘하는 로봇, 성공하는 로봇, 공부도 악기도 연주도 심지어 놀이도 완벽하게 잘하는 로봇. 그러나 로봇을 로봇으로 다룰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혼이 깃든 생명을 로봇처럼 다루면 결국 망가지게 된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젊은 부모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모습이 마치 로봇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정은 메말라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로봇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고통이 보이지 않고, 아이의 분노와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 최근 부모를 통한 아동 학대와 사망 사건은 이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단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오려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회상이 아니라 지금 어린 아이처럼 경험하는 기회가 필요해 보인다.
3. 질문 :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시간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것에 더 집중하면서 그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본다.집콕이 힘든 이유는 예전의 일상이 변해서도 있지만 학습, 여러가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자유롭게 보내지 못해서 시간의넉넉함를 어찌사용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양육자도 , 아이도 힘든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직장 다니시는 분들의 처지는 빼고서의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허용과 시간을 부족하게 주는 분들은 학습의
처짐에 속이 탈것이다. 놀이 부족함이 더 위험하고 속을 태워야 하는 소중함을 잊은채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놀러 바깥에 나가자고 하는 모습이 좋다. 집에서도 심심해 하면서
스스로 놀이를 찾는 모습도 보는 눈이 열렸다. 한 권의 책이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 느낀점 : 이번 장을 읽으며 받은 전반적인 느낌을 한 마디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얄팍하다’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 그 모습은 생태 없는 생태놀이터, 차별하는 무장애놀이터, 전국을 뒤덮은 획일적인 놀이터, 놀이터를 채우고 있는 조약한 놀이기구들, 놀이를 방해하는 게임업체에서 받은 돈으로 놀이 사업을 하는 비윤리성을 통해 들어난다.
지난 5년간 시흥시와 함께 일하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숨쉬는놀이터가 개장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분들의 주요 관심사는 ‘놀이터 만드는데 돈이 얼마 들었나?’ ‘놀이터 공간을 무엇으로 채웠나?’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나도 놀이터를 탐방하는 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놀이터의 겉모습과 예산보다, 놀이터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운영하는 사람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참 설명을 하다보면 듣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 흔들림의 메시지는 이렇게 해석된다 : ‘그런 정보는 필요 없어요. 그렇게 복잡하고 진지한 이야기는 머리가 아파요.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곳 사진 몇 장하고 돈이 얼마 들었나 정도면 충분합니다. 왜 묻지도 않는 질문에 답하시나요?’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모습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 교육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놀이가 일상생활을 통해 어떻게 경험될 수 있는지, 자유놀이가 뇌 과학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왜 중요한지 등을 설명하면 마찬가지로 동공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다행히 최근 들어 내 이야기를 반갑게 들어주고 진지하게 대해주는 분들이 있어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난 좀 간단한 방법을 알려 주면 좋겠어요. 그냥 집에서가 컵라면처럼 금방 먹을 수 있는 그런 정보 말이에요. 또 왜 나보고 변하라고 합니까? 그냥 아이만 잘 놀면 되는 것 아니에요?’ 등등
최근 나는 신박한 정리란 TV 프로그램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겉보기에는 밝고 멀쩡한 사람이 집에 가보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저장 강벽과 과도하게 사 모은 물건들 때문에 무질서 속에서 고통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공간에서 살 수 있을까 놀랄 때가 많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끝날 무렴 출연자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위로를 얻고, 치료를 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상담을 전공한 나로서는 1주일 만에 벌어진 치유의 광경이 놀랍고 감격적이다.
그런데 그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자기 삶을 덜어내는 것이다. 플라스틱 박스에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분리하며 소유를 덜어 내는 것. 그것이 모든 치유의 시작이었다.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가구 재배치도 가능하고, 방 재배치도 가능하다. 방송을 보면 이 과정은 반드시 출연자 스스로 오롯이 며칠에 걸쳐 하게 된다. 난 이 대목이 보이지 않지만 이 프로그램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술회하는 모습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무언가를 깊이 깨닫는다. 그러면서 버림의 미학, 미니멀 라이프의 가치를 스스로 터득한다. 그리고 나서 변화되어 돌아온 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며 숨쉬는놀이터에 탐방 와서, 또 놀이 강의에 오셔서 예산과 놀이 방법을 묻는 분들이 무엇을 노치고 있는지 깨닫는다. 그들은 버림의 과정, 버림의 미학을 소홀히 하고 있다. 신박한 정리는 가구, 옷과 같은 물질의 영역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의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무질서하게 내 머리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해서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숨쉬는놀이터의 운영 방식, 플레이스타트가 말하는 놀이를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놀이 방식, 놀이에 대한 이해를 정리하고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 빈 공간에 새로운 생각을 재배치하고 그 생각의 힘으로 놀이를, 삶을 재배치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생각을 비우려 하지 않는다.
그 비움이 없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바로 우리가 만나는 획일적인 놀이터, 생태놀이터, 무장애놀이터,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싶다.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과연 아이만 고통하고 있을까?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놀이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에도 신박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홀로 조용히 앉아 자신의 생각들을 꺼내 놓고 물건을 비워내듯, 비워내야 한다. 그 비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란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면, 아이는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 참된 지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는 과도한 소유의 고통에서 해방되듯, 생각의 혼돈 속에서 길을 찾게 될 것이라 믿는다.
반성합니다. 집 앞 놀이터가 맘에 들지 않아 아이를 여기저기 숲놀이터가 제일인 것처럼 돌아 다닌 점 깊이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아이가 편히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을 찾다 신도시의 화려한 놀이터에서 놀면 재미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놀이와 아이들의 놀권리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놀이터에 대한 비판 뿐…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으면 되겠지? 라는 아닐한 생각을 했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2. 함께하고 싶은 문장
- 생태란 모름지기 자기 사는 곳 가까이 있는 환경을 일컫는 말이다. 생태놀이터에 조합놀이기구가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환경부 생태 놀이터 가이드북에는 놀이기구나 조합놀이대를 배제한다고 되어 있다.) 초등학생용 모험공간이라고 만들어 놓은 언덕과 그 언덕을 잡고 올라가고 늘어뜨려 놓은밧줄을 보면 무심함의 극치를 느낀다. (p.182)
-단연컨대 놀이터는 국가와 행정과 시민과 어린이가 만들고 가꿀 주제다. 어린이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성숙한 국가라면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 ……… 자본의 한복판을 사는 놀이터 벗들이여! 우리는 아이들 일을 하는 사람답게 튼튼하게, 민망하지 않게, 빨리 멋지게 하려 하지 말고 작고 오래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치고 빠지는 얄팍함이 아니라 머물고 가꾸는 든든한 아이들의 놀이벗이 되어야 한다. 게임과 장난감을 앞세운 상업주의의 포화에 아이들이 오늘도 멍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뼈와 살 모두가 장사꾼인 ‘그 펀드’를 경계하자. (p.201-202)
- 획일화된 결과물들을 보면서, 그런 내 생각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모두 쉬운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모방이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까닭이나 철학을 살피지 않고 외형만을 서둘러 가져오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가져오지 않는 이중성도 함께 목격한다. 바로 ‘놀이터 활동가’의 유무다. 놀이터는 어린이가 ‘실험하고 도전’하고 상상하는 곳이다. …- 어린이 참여 디자인, 책임 있는 퍼실리데이터 또는 디자이너의 균형점을 찾아야 (p.208)
- 아이들이 가려진 장막을 걷어치우고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발견하도 몸에 담을 수 있는 ‘환경’, 그곳을 ‘놀이터’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놀이터가 숨이 멎기 전에.(p.213)
- 아이들 사이의 ‘놀이형평성’이 한없이 무너지고 있고 ‘놀이격차’는 ‘빈부격차’보다 더 크게 벌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오랜 고통이고 응어리다. (p.215)
3.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놀이터에서 PlayBox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것들을 담고 싶은지.. 그리고 관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 아이들의 놀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넉넉한 시간 속에서 볼 수 있을 때 아이들의 자유놀이는 꽃을 피울 수 있다. (p189)
느낀점)
▶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보았는가? 넉넉한 시간이 아이들에게 주어졌는가?
이를 내 스스로에게 묻는데 단번에 예스라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매일 퇴근 후, 아이들 하원해서 오자마자 저녁밥을 차리기가 바빴다. 식사준비와 아이들 목욕을 동시에 해야되는 날도 있다. 저녁을 먹고나면, 나도 씻고 밀린 집안일을 하기 바쁘다. 금세 9시가 된다. 잘 준비를 부랴부랴 해야 하는 일상에서 나에게 넉넉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좋은 놀이터와 최고의 놀이기구는 다름 아닌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p164
정말 최고의 놀이터와 놀이기구는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주말은 우리 가족에겐 황금 같은 시간. 무계획, 일정없음으로 주말을 넉넉하게,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 아이가 점차 자라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는 퇴근 후, 아이들에게 “식사도우미 할 사람~?”이라고 물으며 함께 저녁 준비를 하게 되었다. 야채도 같이 씻고, 계란도 풀고, 식탁 닦고, 수저 놓고.. 아이들과 같이 하면 더 금방 준비하는 것 같다. 이제 슬슬 설거지도 같이 해봐야겠다^^
아이들의 놀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위해, 우선 나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어야 겠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하지만, 마음가짐이라도 편안하게 가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조금 늦게 자면 어떠한가, 설거지 못하면 어떠한가, 오늘 하루는 목욕안하고, 손발만 씻고자면 어떠한가.
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채운다는 말씀 격하게 공감한다..놀기위해 나간 놀이터..하지만 지금은 격하게 다른 놀이터를 지금도 찾아 헤맨다..
비슷한..아님 찍어 놓은듯한 놀이터엔 그래도 유아기땐 잘 이용했던같다. 5,67세 점점 연령대가 올라감에 아이들이 위험하게 논다...그것을 그냥 그렇게 바라볼 부모는 없을거같다..눈치아닌 눈치와 소리치기 일쑤...놀이에 대해 배우기 전에 더더욱 그랬던거같다...내가 배웠던..허용과 또 그 반대의 입장에서 봤을때 충분히 그럴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나도 그랬으니깐..
찍어낸 놀이터라고..위험하게 노니깐 이라고 생각도 하면서 요즘 놀이터에 나가면 또래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만나더라도 아이들이 충분히 놀지 못한다...기껏해야 학원차 기다리면서 다음 학원가기위해 잠시 들리는 아이들....그렇게라도 잠시라도 만나서 놀면 그것만이라도 애들이 행복해한다..
아주 예전에 잠시 아이들하고 놀아주는학원은 없나??놀이학원 말이다...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아이들을 최대한 늦게까지 많이 놀아야한다는 위주였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위험해서..놀친구가없어서.놀이터자체가 시시해서...등 아이들이 갈곳이 없어진다..놀이터에 나갈때마다 친구가없어서 안나간다는 아이들을보면 참 안타깝다..우리딸마저 책가방에 꾸깃꾸깃 친구들에서 차마 전하지 못한 편지들 "○○아!! 놀이터에서 놀 수 있어??몇시에보자!! 전달을 몇번했지만 매번 안된다는 답변을 받고 이젠 주고싶어도 혼자쓰고 적어서 다시 집으로 가져온다..맘껏 놀게 해주고싶지만 그것 또한 쉽지않네요..
예전엔 그냥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 그네등 찍어낸듯이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플레이스타터 강의 첫 시간에 편해문선생님의 놀이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후로 주변에
있는 놀이터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정말 다 비슷하게 있는것이었다 어딜가나 어느 지역을 가나 조금 특색있게 놀이기구만
바뀌었을뿐이었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놀이를 잘 한다. 열심히 논다.
요즘 놀이터는 마음껏 뛰는것도 싶진않다. 집보다는 자유롭지만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이기에
조심해야해서 특히 3학년 아이들은 더욱 그러한듯하다.놀다가 학원가구 또 어린아이들이
있으니 제약이있는듯하다. 아이들이 마음껏해도 눈치 안보이는곳이 생기면 좋을듯하다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곳이다. 시흥은 계획된 도시라 그런지 걷고 싶은 길이 있어 곳곳에 있어 가까운곳에 작은공원들도 있어 그나마 아이들이 달리고
자유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다행이다. 지역에 맞게 주민과 행정,아이들 등 함께 놀이터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것도 좋고 해나가야 일이지만 그 과정이 결과로 이루어져 가는 동안 현재 주어진 곳에서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와 최고의 놀이기구는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이 글귀처럼 놀이시간과 허용이 주어진다면
이번 장에서 아이의 으뜸 놀이는 보호가 곁에서 따라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며 늘 아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딸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옆에서 글 쓰는 흉내를 냈고, 화장을 하면 얼굴 가능 볼펜으로 낙서를 하고, 엄마 아빠가 자리를 비우면 냉큼 싱크대로 달려가 수도를 켜고 물장난을 했다. 밀가루 놀이, 이불로 집짓기 등등 그 많고 많은 놀이들이 생각해보면 부모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이다. 아이는 놀이를 스스로 시작할 수 있다. 아이 안에는 놀이의 할 본능이 있다.
그러나 그 놀이는 무(無)에서 창조하는 되는 것이 아니다. 늘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본 것에서 출발하고 연결되어 있다. 주위에 있는 친구, 언니, 누나, 형, 동생의 시도를 보고 보고 또 보면서 내면에 동기가 생기고 준비가 되면 시도한다.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정글짐에 늑대에게 키워진 모글리는 동물의 습성을 이기고 인간의 행동을 한 것으로 동화는 묘사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위험에 대한 도전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는 뇌과학을 공부하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사람과 살아야 한다.
또 저자는 아이들과 부모의 글루밍을 걱정한다. 하지만 글루밍은 모든 인간 내면에 숨겨진 본성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만이 강화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만, 또 이런 본능이 있어서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간 안에는 그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임신 과정을 통해 태어나기 때문에 엄마와 정서적 연결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가 보내는 이 정서 반응은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 반응을 접하면 접할수록 모성본능, 부성 본능이 발현되면서 이타성을 연습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것을 정리한 것이 존 볼비의 애착이론이다. 결국 글루밍 적인 정서 관계의 가능성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지만 건강한 양육 경험,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것이다. 원래 훌륭한 인간이란 없다.
동물행동학 연구에 의하면 출산 중 느끼는 산고는 새끼에 대한 깊은 사랑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조건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사람은 여러 경우가 있지만, 동물은 무통으로 새끼를 낳을 경우,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 등 관계가 단절된다. 이처럼 생명을 낳고 기르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역할과 가치를 품고 있다. 관련 사실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놀라울 뿐이다. 생명을 길러내는 고도의 전문성과 능력을 학위 없이 누구가 습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명이 고도화 된 사회일수록 이 일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드물어진다. 그 결과 정인이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인 일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고 더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다. 결론적으로 으뜸 놀이를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인간다움을 갖추기 위해서도 우리는 인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자. 아름다운 생명으로 귀하게 여기자.
나누고 싶은 문장
“가장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하는 것.”(p122)
질문
바빠진 삶의 리듬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환경, 미세먼지와 전염병, 기후 위기 속에서 대안놀이 전환놀이가 필요하다는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아이한테 알맞은 일을 거들 수 있게 하자. 아이들은 세상을 소소한 일과 놀이를 통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데 어른들은 지식만 억지로 먹이려 하니 아이들이 힘들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정말 최고의 놀이다. (p122)
느낀점)
▶ 아이들은 무엇으로 살까? 나는 무엇으로 살까?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도 답하기 참 어렵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책을 읽으며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내 삶의 여정이라고 느꼈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찾는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겠다.
나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보니 주로 부모의 모습을 따라하거나 어린이집에서 본 것들을 따라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어린이집 놀이와 엄마아빠놀이다.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도 세탁기, 소꿉놀이, 포대기, 설거지 놀이 등 엄마 역할을 따라하는 것들이었다. 결국 내가 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허용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장난감을 안사줘도 됬었는데..^^;;
그 뒤로 아이들에게 식사도우미를 해달라며 야채를 씻어달라고 하고, 같이 운동화를 빨기도 했다. 조그마한 두 손으로 어찌나 야무지게 해내는지.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한 아이들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 최고의 놀이라는 말에 참 공감이 된다. 아이들에게 더 곁을 내어주고, 내가 하는 일들을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들을 더 많이 갖고 싶다.
놀이의 관점으로 보니 우리 둘째딸 놀이가 충만한 아이더라구요.^^;;; 100장이 넘는 색종이로 만든 인형들을 종이백에 고이 담아놓았는데, 전에는 한낱 쓰레기ㅡ.ㅜ로만 보였던 그 것이 주워온 비석, 공기돌 못지 않은 그 아이만의 역사가 있는 종이더라구요..ㅜ.ㅠ쓸데없는 것 모은다고 타박주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ㅜ.ㅠ
8살이 된 아들 요즘 이 아이는 무엇으로 살까? 요즘 놀이를 보면 내가 보기엔 그냥 놀이인데.. 어떻게 하면 더 어렵게 놀까?라고 고민하는 8세…. 왜 그냥 놀면 되지 어렵게 놀아?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요즘 같이 집콕인시대에 뭔가 혼자놀기가 심심해서 그런 생각을 한건지 도통 알 수 없을때 문뜩 이런생각을 해보았다. 몸으로 놀 때 항상 위험한 놀이가 재미있듯이 집에서 노는 놀이 또한 단순함에서 조금 더 진화한 짜릿한 놀이를 생각하게 된게 아닌지.. 가령 자동차 놀이도 그냥 놀이에서 벗어난 자동찻길에 물놀이와 웅덩이가 있어 그 곳을 통과하면서 짜릿함을 느끼는지 알수 없지만 집에서 여러놀이에 빠져있는 지금 이 아이는 가장 행복하다. 요즘 이 아이의 최대 관심사는 ‘팽이’ … 이 아이는 왜 항상 팽이를 만들지? 라는 생각을 했던 찰라… 이 아이는 정말 놀이…를 하고 있는거구나.. 종이든 블록이든 나무든…모든 팽이를 만드는 아이는 결국 놀잇감을 더 잘만들고 싶어 그랬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냥 그렇게 눈으로만 보고 사진으로 저장하지 못한게 못내 아쉬운 애미) 요즘 이 아이의 힘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놀지?” 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아들… 이 엄마는 그 옆에서 허용과 편안한 사람으로 그냥 너그럽게 바라볼 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 아이가 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2. 함께하고 싶은 문장
- 놀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재미보다는 웃음과 따뜻함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즐거움과의 만남이라 하겠다. (p.133)
- 오늘날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 하는 놀이는 놀이라기 보다는 거의 게임이나 레크레이션에 가깝다고 해야 옳다. 설령 그것이 전래놀이나 민속놀이라는 이름이 앞에 붙어 있어도 말이다. 무엇이 놀이이고 무엇이 게임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p.138-139)
- 놀이는 아이들을 세상에 없던 창조의 시공간으로 초대하지만, 게임은 이미 만들어진 질서에 철저히 따를 것을 강요한다. 자유가 있고 실험을 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놀이다 (p.142)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모으는 상자가 넘친답니다. 그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커, 다 먹은 아이스크림껍질, 자신이 만든 작품등 )클레이로 만든 것들 상자도 따로 있답니다. 몇몇은 아이스크림 껍질은 몰래 버리기도 했어도 아이는 몰라요 없어진지도요 책꽂이 칸을 찾지하고 있어 치우고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모으면서 자기의 보물인양 넣는것 보고 최대 초등 6학년까지 참기로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모으는 상자가 넘친답니다. 그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커, 다 먹은 아이스크림껍질, 자신이 만든 작품등 )클레이로 만든 것들 상자도 따로 있답니다. 몇몇은 아이스크림 껍질은 몰래 버리기도 했어도 아이는 몰라요 없어진지도요 책꽂이 칸을 찾지하고 있어 치우고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모으면서 자기의 보물인양 넣는것 보고 최대 초등 6학년까지 참기로 했습니다.
항상 나에게 질문해 왔던 점으로는 ‘과연 내가 놀이의 중요성으로 생각하는게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나 또 한 ‘아이의 뇌를 좋게 해 주려는 생각’에 있어서 인지 아님 ‘놀이를 잘 하는 사람이 창의성이 높아진다’ 라는 생각을 해서 인지.. 아님 내가 놀았던 ‘전통전래 놀이’가 진짜놀이라 생각했던건지 의문을 가졌던 것들이 사라지게 한 1장… 놀이는 머리가 좋아지라고 하는게 아닌 아이가 그 순간을 행복해 할 때, 누가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놀이라는 것을… 어찌보면 나 또한 불안한 엄마의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게 아닐까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아직 8살, 5살 밖에 안된 아이들에게… 요즘같이 집콕인 시대에 조금 더 여유롭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2. 함께하고 싶은 문장
- 놀이 속에 있는 아이가 주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이 놀이이다. 놀아야 사람이고 놀아야 아이이다. (p.29)
- 자본주의에서 양육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물건을 함부로 사주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만약 뭔가 하나를 사줄 수 밖에 없다면 스스로 여러 차례 물어봐야 한다. 아이들이 사는 놀이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이 아이들한테 하는 소리는 딱 하나, ‘사라’다. 당연하게도 이 소비의 고리를 끼워 준 사람은 보호자일 가능성이 크다.(p.51)
- 누가 놀잇감을 비싸고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놀잇감을 누가 더 잘만드느냐가 중요 했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놀고, 놀잇감은 스스로 만들어 논다는 아이들 놀이의 명제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놀이를 언제 시작하겠는가, 어른들이 놀자고 할 때? 아니다, 장난감을 사줬을 때? 아니다. 놀이는 심심해야 시작된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나두자. (p.95)
- ‘놀면서 기다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부디 조기교육, 영재교육, 몰입교육 이라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지 마시라. 지금은 아이에게 자유와 놀이를 허용하고 허용하고 허용할 때다. 너그럽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내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부족함을 느낀다면 유머러스 정도를 추가하자. 아이와 함께 지내는 데 이 세가지면 정말 부족함이 없다.(p.113)
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란 글쓰는데 잠시 멍~~~해진다..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아이들은 무엇으로 살아??"
라고 물었더니 초1학년에겐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고 더 크면 다시 한번 물어봐달란다ㅠㅠ몇일 전 차안에서 첫애가 둘째한테 "아이는 왜 태어나는지 알아?"라고. 물어봤을때 둘째가 "아빠 씨앗 받아 태어나지"둘째 입장에선 최선의 대답이라 생각한다..하지만 첫아인 그말이 아니고 "왜??란 말을 반복한다.나도 궁금하다. 너의 생각..왜?
"아이가 태어나는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태어나는거라고..말한다..말하는 순간 세상을 지키기 위해선 뭘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이든다.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하는지 어른들 또한 명확한 답을 못준거같다.
아이가 있기전엔 놀이는 계속이어졌던거같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잠시 아이가 어릴때 나만의 놀이가 너무나도 간절했고 아이가 어서 잠들기만을 기다리며 옆에서 자는척하며 보초를 서며 어느순간 아이를 재우고 나만의 놀이를 찾으려는 노력도했다.
현실은 노는것 대신 자는것을 선택하기 일쑤...아이를 키우면서 나에게 놀이란 어릴때와 다르게 정말 소박한거같다.
안 본 드라마 몰아보기..남편과 맥주한잔..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떨기 그 외엔 딱히 생각나는 놀거리가 없다.
집 밖에 나가는것은 고사하고,맘 편히 큰소리 못내고 조용히 즐기는 자유시간...
누군가는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안된다고 말을했는데..그 익숙함에 길들여지다 못해 쩌들어있는건 아닌지...
질문이다.무엇으로 사는가?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행복하게 자기 인생을 이끌며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기 바란다 정도였다. 이러한 삶이 되려면 어릴 때 좋아 하는게 뭔지 어떨 때 행복했는지 등을 느껴보고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구 부모님의 계획대로 이끌러 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우선 내 아이들부터 살펴봐야겠다. 예전엔 내 생각대로 부스체험, 프로그램 되어진 것들에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는 명목아래 많은 시, 마을축제,
기타프로그램 등을 다녔다. 물론 아이들도 좋아하긴 하였으며 그 축제 등에서
얻어지는 것들도 있었다.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올 스톱 되어 아무곳에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금방 끝날거라 생각되어지며 참으며 예전처럼 돌아다닐 수 있을거야하는 희망이 사라진 지금 답답할 때가 더 많다. 하진만 동전의 양면처럼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많이 주어져서 제약 없이 시간을 사용하며 놀이 하게 되었다.이 책에서 나온 한가한 시간 속에서 자유놀이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게 해야한다. 글귀처럼 아이들이 놀이를 긴 시간 집중하며 놀이할 수 있 는시간들이 많아진 것이다.집에서도 이것저것 잘 놀이하는 아이들이었지만 집에 있게 되니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책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공공재로 나아가는게 맞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사유재라고 해도 아이들이 풍요롭긴해도 진정한 놀이보다는 부모에 이끌린 경험이 많기에 소외계층도 안타깝지만 둘 다 공공재가 되어 진정한 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게 우리들이 나아갈 길이겠지요 쉽진않지만요
감정이 메마른 부모들에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 외에 어린 아이처럼 경험하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말씀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특히 7살 이전은...ㅠㅠ 저도 지금 어린 아이처럼 즐거움을 풍성히 누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4장 놀이는 아이 안에 있다 최재훈
1. 나누고 싶은 문장
“나는 어릴 때 놀던 힘을 꺼내 오늘을 산다.” (p239)
“아이들이 놀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p242)
“만약 아이도 놀고 우리도 논다면 그것은 자본을 향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의 길에 들어선 것이리라.” (p253)
“기본놀이는 어린이 모두의 보편적 사회적 권리이며 심사나 선별없이 모든 어린이에게 도착해야 할 권리다.” (p326)
2. 느낀 점
딸아이를 키우며 내가 자주 꺼내 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딸아이 나이 때 내 모습’이다. 뭔가 대단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딸아이를 야단칠 때 그 수위가 적당했는지를 살펴볼 때 나는 딸아이 나이에 내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며 내가 얼마나 무모한 요구를 딸에게 하는지 느끼곤 한다. 다시 말해 나도 지킬 수 없는, 지키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는 당연한 듯 요구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소위 ‘날라리’ 였다. 빽바지 교복에 구두를 시고, 심하게 꺾인 U자 뒤집힌 모양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물론 불량 써클에 가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울리는 친구 10여 명이 늘 붙어 다니며 사고도 치고 공부도 같이했다. 그 시절에는 전자 오락기게가 처음 대중화되어 ‘오락실’이란 것이 동네 마다 생겼다. 지금은 그 자리를 PC방이 차지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신나게 ‘갤러그’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부 선생님들이 들이닥쳤다. 나와 친구들 3명은 오락실 주인 방으로 튀어 들어가 이불을 쓰고 들어 누웠다. 밖에서는 우당탕 퉁 탕, 윽 윽... 두들겨 맞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고 있었다.
몇 십분 뒤 바깥은 조용해 졌고, 주인아저씨는 웃으며 이제 끝났다고 알려주셨다. 우린 마치 비밀 기지에 잠입해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나온 특공대원처럼 의기양양하게 밖을 나왔다. 그 긴장감 속에서도 우린 히히덕거리며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 때의 감정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서 나는 일부러 교무실을 들렸다. 교무실에는 어제 오락실에서 걸린 아이들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그 이후로 몇 번 오락실을 가고 발길을 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하러 그런 가슴조리는 일을 내 돈 주고 해야 한단 말이냐’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밖에 나는 말하기 부끄러운 수많은 사고들을 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건강한 인간으로 잘 자랐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 딸을 보며 끝없는 걱정과 불안에 휩쌓일까? 그 때 균형을 잡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내 어릴 적 추억이다.
이렇게 어릴 적 기억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며, 타인을 이해하는 거울이며, 오늘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힘을 조절하는 변속기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은 오늘을 사는 힘이다. 만약 이 기억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득할까? 무엇을 딸아이를 이해할까? 책으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그것은 내 어릴 적 기억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도구, 확신을 위한 지원 사격이지, 타당성과 확신 자체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 참된 자유와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의 의미다. 그처럼 인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다시 말 해 정답만으로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되기 위해 나는 또 우리 아이들은 ‘위험해 보이는’ 경계 주위를 넘나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경계의 존재(위험)를 스스로 익히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인간이 되어가는 길이다.
그런데 딸아이를 야단치며 나는 내 딸이 오류 없는 정답만으로 이뤄어진 삶을 살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류 없이 정답만으로 작동하는 존재는 무엇인다. 우린 그것을 ‘로봇’이라고 부른다. 공부 잘하는 로봇, 성공하는 로봇, 공부도 악기도 연주도 심지어 놀이도 완벽하게 잘하는 로봇. 그러나 로봇을 로봇으로 다룰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혼이 깃든 생명을 로봇처럼 다루면 결국 망가지게 된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젊은 부모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모습이 마치 로봇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정은 메말라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로봇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고통이 보이지 않고, 아이의 분노와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 최근 부모를 통한 아동 학대와 사망 사건은 이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단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오려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회상이 아니라 지금 어린 아이처럼 경험하는 기회가 필요해 보인다.
3. 질문 :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4장-놀이는 아이안에 있다.
-함께 하고 싶은 문장
아이들이 타고나는것들이 있다.
하나는 놀이이고 또 하나는 부지런함이다.
아이들은 이 둘을 합쳐 놀이에 도가 트는이다.
-느낀점
하루에 1~2시간만 더 푹 잤으면..라는 너무 현실적신 꿈이 생기기도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뭐가 이렇게 배울게 많은지..
어느 순간 일상과 더불어 모든 기준은 아이들로 바뀌게 되었다..
청소,설거지는 아이들의 건강활동
게임은 아이들의 놀이
좋은식당은 아이들이 잘먹는곳
사색은 아이들과 대화로
아이들의 놀이는 가끔 어른들의 시선에서 보면 아슬아슬 불안하기 짝이없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중이니 그게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높은곳을 올라가 뛰어내리기도하고 애지중지한 물건을 부수기도라고 위험한도구를 만지기도하고 현실적으로 이 모든것을 따라다니며 일일히 컨트롤하긴 어렵다.
컨트롤 하더라도 과연 그게 아이들에게 좋은일일까?라는 생각도든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다칠수도있다.
아이도 부모가 왜 위험하다고 하는것인지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게된다.
사실 우리집에선 딱히 허용되지 않는 도구는 없는거같다.7살아들이 칼을 사용하다 한두번 벤적이있다.
사고는 정말 한순간이다.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이 일을 통해 아이는 커터칼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수있었고 주의해야한다는점까지 배울수있었다.
덕분에 칼로 장난을 치는일이 없어져 안심할수 있었다.
또 가정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대라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향한 나의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마치 직장에서 만난 고객을 대하듯..
점점 아이들의 취향을 지지하고 존중하게 되었다.간혹 한 겨울에 여름신발을 신는다든지 아들이 누나옷을 입고다닌다든지 신발을 짝짝으로 신는다든지.
정말 우리의 기준에서는 난해한 취향도 있었지만 혹여나 아이의 상상력이나 가능성을 차단하게 될까봐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다보니 그 다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아이의 마음부터 알아보는게 중요하다는걸 알게되었다.
시간적 여유도 없고 인내심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최대한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속도가 있고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질문
우리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지??
4장 놀이는 아이안에 있다.
🌳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
-중요한 것은 놀이를 이끌기를 멈추고,놀이 할 수 있는 환경을 가꿔주고 ,
놀이를 이어주고, 아이들이 잘 어울릴때 빠지고, 아이들이 같이하고자 할 때
함께하는 열린 태도 그 어디쯤일 것이다. 아이와 놀려면 한없이 유연해야한다.
아이들은 타고 나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놀이이고 또 하나는 부지런함이다.
아이들은 이 둘을 합쳐 놀이에 도가 트는 것이다. 참말이다. (269쪽)
🍓느낀점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플레이 즐거움의발견이라는 책이 종종
생각났다. 그 책을 쓰신 분들도 미국에서 놀이활동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쓰신책이다.
내용은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결국은 놀이는 아이들의 평생 친구이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구나 , 맞구나 하는 고개가 끄덕 끄덕
해진다. 놀이로 자란다는것 코로나로 인해 집콕이 늘면서 사람들이 바깥활동의 제한 때문에
힘들어한다. 물론 나도 처음 몇달은 쉽지않았다 1년을 지내고 나니 집콕에서 하는 생활들이
시간의 자유를 줌이 긍정적인 부분이다. 예전의 일상의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그 또한 다른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시간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것에 더 집중하면서 그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본다.집콕이 힘든 이유는 예전의 일상이 변해서도 있지만 학습, 여러가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자유롭게 보내지 못해서 시간의넉넉함를 어찌사용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양육자도 , 아이도 힘든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직장 다니시는 분들의 처지는 빼고서의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허용과 시간을 부족하게 주는 분들은 학습의
처짐에 속이 탈것이다. 놀이 부족함이 더 위험하고 속을 태워야 하는 소중함을 잊은채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놀러 바깥에 나가자고 하는 모습이 좋다. 집에서도 심심해 하면서
스스로 놀이를 찾는 모습도 보는 눈이 열렸다. 한 권의 책이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다.
☕️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아이들에게 놀이밥을 먹이는 자신만의 다짐은 무엇인가요?
(예- 하루에 1시간이상 집안, 밖에서 놀이밥을 먹을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3장 최재훈
* 나누고 싶은 글귀 : “우리는 아이를 잊어 가고 있다.” (p166)
* 느낀점 : 이번 장을 읽으며 받은 전반적인 느낌을 한 마디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얄팍하다’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 그 모습은 생태 없는 생태놀이터, 차별하는 무장애놀이터, 전국을 뒤덮은 획일적인 놀이터, 놀이터를 채우고 있는 조약한 놀이기구들, 놀이를 방해하는 게임업체에서 받은 돈으로 놀이 사업을 하는 비윤리성을 통해 들어난다.
지난 5년간 시흥시와 함께 일하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숨쉬는놀이터가 개장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분들의 주요 관심사는 ‘놀이터 만드는데 돈이 얼마 들었나?’ ‘놀이터 공간을 무엇으로 채웠나?’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나도 놀이터를 탐방하는 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놀이터의 겉모습과 예산보다, 놀이터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운영하는 사람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참 설명을 하다보면 듣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 흔들림의 메시지는 이렇게 해석된다 : ‘그런 정보는 필요 없어요. 그렇게 복잡하고 진지한 이야기는 머리가 아파요.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곳 사진 몇 장하고 돈이 얼마 들었나 정도면 충분합니다. 왜 묻지도 않는 질문에 답하시나요?’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모습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 교육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놀이가 일상생활을 통해 어떻게 경험될 수 있는지, 자유놀이가 뇌 과학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왜 중요한지 등을 설명하면 마찬가지로 동공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다행히 최근 들어 내 이야기를 반갑게 들어주고 진지하게 대해주는 분들이 있어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난 좀 간단한 방법을 알려 주면 좋겠어요. 그냥 집에서가 컵라면처럼 금방 먹을 수 있는 그런 정보 말이에요. 또 왜 나보고 변하라고 합니까? 그냥 아이만 잘 놀면 되는 것 아니에요?’ 등등
최근 나는 신박한 정리란 TV 프로그램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겉보기에는 밝고 멀쩡한 사람이 집에 가보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저장 강벽과 과도하게 사 모은 물건들 때문에 무질서 속에서 고통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공간에서 살 수 있을까 놀랄 때가 많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끝날 무렴 출연자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위로를 얻고, 치료를 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상담을 전공한 나로서는 1주일 만에 벌어진 치유의 광경이 놀랍고 감격적이다.
그런데 그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자기 삶을 덜어내는 것이다. 플라스틱 박스에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분리하며 소유를 덜어 내는 것. 그것이 모든 치유의 시작이었다.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가구 재배치도 가능하고, 방 재배치도 가능하다. 방송을 보면 이 과정은 반드시 출연자 스스로 오롯이 며칠에 걸쳐 하게 된다. 난 이 대목이 보이지 않지만 이 프로그램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술회하는 모습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무언가를 깊이 깨닫는다. 그러면서 버림의 미학, 미니멀 라이프의 가치를 스스로 터득한다. 그리고 나서 변화되어 돌아온 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며 숨쉬는놀이터에 탐방 와서, 또 놀이 강의에 오셔서 예산과 놀이 방법을 묻는 분들이 무엇을 노치고 있는지 깨닫는다. 그들은 버림의 과정, 버림의 미학을 소홀히 하고 있다. 신박한 정리는 가구, 옷과 같은 물질의 영역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의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무질서하게 내 머리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해서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숨쉬는놀이터의 운영 방식, 플레이스타트가 말하는 놀이를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놀이 방식, 놀이에 대한 이해를 정리하고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 빈 공간에 새로운 생각을 재배치하고 그 생각의 힘으로 놀이를, 삶을 재배치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생각을 비우려 하지 않는다.
그 비움이 없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바로 우리가 만나는 획일적인 놀이터, 생태놀이터, 무장애놀이터,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싶다.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과연 아이만 고통하고 있을까?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놀이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에도 신박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홀로 조용히 앉아 자신의 생각들을 꺼내 놓고 물건을 비워내듯, 비워내야 한다. 그 비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란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면, 아이는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 참된 지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는 과도한 소유의 고통에서 해방되듯, 생각의 혼돈 속에서 길을 찾게 될 것이라 믿는다.
* 질문 : 나는 삶을 정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생각을 정리하면 살아가고 있는가?
3장 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놀이로 채운다
1. 느낀점
반성합니다. 아이의 교육환경에만 집중한 채 놀이터에 대해 방관했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집 앞 놀이터가 맘에 들지 않아 아이를 여기저기 숲놀이터가 제일인 것처럼 돌아 다닌 점 깊이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아이가 편히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을 찾다 신도시의 화려한 놀이터에서 놀면 재미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놀이와 아이들의 놀권리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놀이터에 대한 비판 뿐…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으면 되겠지? 라는 아닐한 생각을 했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2. 함께하고 싶은 문장
- 생태란 모름지기 자기 사는 곳 가까이 있는 환경을 일컫는 말이다. 생태놀이터에 조합놀이기구가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환경부 생태 놀이터 가이드북에는 놀이기구나 조합놀이대를 배제한다고 되어 있다.) 초등학생용 모험공간이라고 만들어 놓은 언덕과 그 언덕을 잡고 올라가고 늘어뜨려 놓은밧줄을 보면 무심함의 극치를 느낀다. (p.182)
-단연컨대 놀이터는 국가와 행정과 시민과 어린이가 만들고 가꿀 주제다. 어린이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성숙한 국가라면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 ……… 자본의 한복판을 사는 놀이터 벗들이여! 우리는 아이들 일을 하는 사람답게 튼튼하게, 민망하지 않게, 빨리 멋지게 하려 하지 말고 작고 오래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치고 빠지는 얄팍함이 아니라 머물고 가꾸는 든든한 아이들의 놀이벗이 되어야 한다. 게임과 장난감을 앞세운 상업주의의 포화에 아이들이 오늘도 멍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뼈와 살 모두가 장사꾼인 ‘그 펀드’를 경계하자. (p.201-202)
- 획일화된 결과물들을 보면서, 그런 내 생각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모두 쉬운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모방이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까닭이나 철학을 살피지 않고 외형만을 서둘러 가져오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가져오지 않는 이중성도 함께 목격한다. 바로 ‘놀이터 활동가’의 유무다. 놀이터는 어린이가 ‘실험하고 도전’하고 상상하는 곳이다. …- 어린이 참여 디자인, 책임 있는 퍼실리데이터 또는 디자이너의 균형점을 찾아야 (p.208)
- 아이들이 가려진 장막을 걷어치우고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발견하도 몸에 담을 수 있는 ‘환경’, 그곳을 ‘놀이터’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놀이터가 숨이 멎기 전에.(p.213)
- 아이들 사이의 ‘놀이형평성’이 한없이 무너지고 있고 ‘놀이격차’는 ‘빈부격차’보다 더 크게 벌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오랜 고통이고 응어리다. (p.215)
3.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놀이터에서 PlayBox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것들을 담고 싶은지.. 그리고 관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3장-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놀이로 채운다
함께하고 싶은 문장)
▶ 아이들의 놀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넉넉한 시간 속에서 볼 수 있을 때 아이들의 자유놀이는 꽃을 피울 수 있다. (p189)
느낀점)
▶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보았는가? 넉넉한 시간이 아이들에게 주어졌는가?
이를 내 스스로에게 묻는데 단번에 예스라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매일 퇴근 후, 아이들 하원해서 오자마자 저녁밥을 차리기가 바빴다. 식사준비와 아이들 목욕을 동시에 해야되는 날도 있다. 저녁을 먹고나면, 나도 씻고 밀린 집안일을 하기 바쁘다. 금세 9시가 된다. 잘 준비를 부랴부랴 해야 하는 일상에서 나에게 넉넉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좋은 놀이터와 최고의 놀이기구는 다름 아닌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p164
정말 최고의 놀이터와 놀이기구는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주말은 우리 가족에겐 황금 같은 시간. 무계획, 일정없음으로 주말을 넉넉하게,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 아이가 점차 자라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는 퇴근 후, 아이들에게 “식사도우미 할 사람~?”이라고 물으며 함께 저녁 준비를 하게 되었다. 야채도 같이 씻고, 계란도 풀고, 식탁 닦고, 수저 놓고.. 아이들과 같이 하면 더 금방 준비하는 것 같다. 이제 슬슬 설거지도 같이 해봐야겠다^^
아이들의 놀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위해, 우선 나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어야 겠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하지만, 마음가짐이라도 편안하게 가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조금 늦게 자면 어떠한가, 설거지 못하면 어떠한가, 오늘 하루는 목욕안하고, 손발만 씻고자면 어떠한가.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부모인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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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분량의 책을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누니 재밌어요^^
저는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될 것 같아서요 ㅠㅠ당분간 참여가 힘들것 같아요 ㅠㅠ
2월 9일에 종업식을 하는데, 그 이후 일정부터 또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올려주시는 글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3장-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놀이로 채운다 .
-함께 하고 싶은 문장
놀이터가 없어도
-느낀점
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채운다는 말씀 격하게 공감한다..놀기위해 나간 놀이터..하지만 지금은 격하게 다른 놀이터를 지금도 찾아 헤맨다..
비슷한..아님 찍어 놓은듯한 놀이터엔 그래도 유아기땐 잘 이용했던같다. 5,67세 점점 연령대가 올라감에 아이들이 위험하게 논다...그것을 그냥 그렇게 바라볼 부모는 없을거같다..눈치아닌 눈치와 소리치기 일쑤...놀이에 대해 배우기 전에 더더욱 그랬던거같다...내가 배웠던..허용과 또 그 반대의 입장에서 봤을때 충분히 그럴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나도 그랬으니깐..
찍어낸 놀이터라고..위험하게 노니깐 이라고 생각도 하면서 요즘 놀이터에 나가면 또래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만나더라도 아이들이 충분히 놀지 못한다...기껏해야 학원차 기다리면서 다음 학원가기위해 잠시 들리는 아이들....그렇게라도 잠시라도 만나서 놀면 그것만이라도 애들이 행복해한다..
아주 예전에 잠시 아이들하고 놀아주는학원은 없나??놀이학원 말이다...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아이들을 최대한 늦게까지 많이 놀아야한다는 위주였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위험해서..놀친구가없어서.놀이터자체가 시시해서...등 아이들이 갈곳이 없어진다..놀이터에 나갈때마다 친구가없어서 안나간다는 아이들을보면 참 안타깝다..우리딸마저 책가방에 꾸깃꾸깃 친구들에서 차마 전하지 못한 편지들 "○○아!! 놀이터에서 놀 수 있어??몇시에보자!! 전달을 몇번했지만 매번 안된다는 답변을 받고 이젠 주고싶어도 혼자쓰고 적어서 다시 집으로 가져온다..맘껏 놀게 해주고싶지만 그것 또한 쉽지않네요..
-질문
놀이를 채우기 위해서 어떤걸하시는지??
🏰 3장 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놀이로 채운다
😝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
- 아이들이 놀다가 더러워지고 소란스럽고 어지르고 다치는게 놀이다.
🤗느낀점
예전엔 그냥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 그네등 찍어낸듯이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플레이스타터 강의 첫 시간에 편해문선생님의 놀이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후로 주변에
있는 놀이터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정말 다 비슷하게 있는것이었다 어딜가나 어느 지역을 가나 조금 특색있게 놀이기구만
바뀌었을뿐이었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놀이를 잘 한다. 열심히 논다.
요즘 놀이터는 마음껏 뛰는것도 싶진않다. 집보다는 자유롭지만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이기에
조심해야해서 특히 3학년 아이들은 더욱 그러한듯하다.놀다가 학원가구 또 어린아이들이
있으니 제약이있는듯하다. 아이들이 마음껏해도 눈치 안보이는곳이 생기면 좋을듯하다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곳이다. 시흥은 계획된 도시라 그런지 걷고 싶은 길이 있어 곳곳에 있어 가까운곳에 작은공원들도 있어 그나마 아이들이 달리고
자유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다행이다. 지역에 맞게 주민과 행정,아이들 등 함께 놀이터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것도 좋고 해나가야 일이지만 그 과정이 결과로 이루어져 가는 동안 현재 주어진 곳에서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와 최고의 놀이기구는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이 글귀처럼 놀이시간과 허용이 주어진다면
아이들은 정말 신나게 놀이한다. 그 안에서 자유롭게 놀이하며 웃는다.
그 기회를 많이 줘야 겠다.
😲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요즘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놀이터는 어디인가요?
(집, 집근처 놀이터, 같이 책 읽는 거실 한켠 등)
어머나 :) 너무 귀여운 사진까지 공유해주셨네요- 아구 귀여워랑
2장 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최재훈
이번 장에서 아이의 으뜸 놀이는 보호가 곁에서 따라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며 늘 아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딸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옆에서 글 쓰는 흉내를 냈고, 화장을 하면 얼굴 가능 볼펜으로 낙서를 하고, 엄마 아빠가 자리를 비우면 냉큼 싱크대로 달려가 수도를 켜고 물장난을 했다. 밀가루 놀이, 이불로 집짓기 등등 그 많고 많은 놀이들이 생각해보면 부모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이다. 아이는 놀이를 스스로 시작할 수 있다. 아이 안에는 놀이의 할 본능이 있다.
그러나 그 놀이는 무(無)에서 창조하는 되는 것이 아니다. 늘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본 것에서 출발하고 연결되어 있다. 주위에 있는 친구, 언니, 누나, 형, 동생의 시도를 보고 보고 또 보면서 내면에 동기가 생기고 준비가 되면 시도한다.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정글짐에 늑대에게 키워진 모글리는 동물의 습성을 이기고 인간의 행동을 한 것으로 동화는 묘사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위험에 대한 도전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는 뇌과학을 공부하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사람과 살아야 한다.
또 저자는 아이들과 부모의 글루밍을 걱정한다. 하지만 글루밍은 모든 인간 내면에 숨겨진 본성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만이 강화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만, 또 이런 본능이 있어서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간 안에는 그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임신 과정을 통해 태어나기 때문에 엄마와 정서적 연결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가 보내는 이 정서 반응은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 반응을 접하면 접할수록 모성본능, 부성 본능이 발현되면서 이타성을 연습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것을 정리한 것이 존 볼비의 애착이론이다. 결국 글루밍 적인 정서 관계의 가능성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지만 건강한 양육 경험,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것이다. 원래 훌륭한 인간이란 없다.
동물행동학 연구에 의하면 출산 중 느끼는 산고는 새끼에 대한 깊은 사랑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조건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사람은 여러 경우가 있지만, 동물은 무통으로 새끼를 낳을 경우,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 등 관계가 단절된다. 이처럼 생명을 낳고 기르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역할과 가치를 품고 있다. 관련 사실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놀라울 뿐이다. 생명을 길러내는 고도의 전문성과 능력을 학위 없이 누구가 습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명이 고도화 된 사회일수록 이 일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드물어진다. 그 결과 정인이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인 일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고 더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다. 결론적으로 으뜸 놀이를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인간다움을 갖추기 위해서도 우리는 인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자. 아름다운 생명으로 귀하게 여기자.
나누고 싶은 문장
“가장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하는 것.”(p122)
질문
바빠진 삶의 리듬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환경, 미세먼지와 전염병, 기후 위기 속에서 대안놀이 전환놀이가 필요하다는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2장-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함께하고 싶은 문장)
▶ 아이한테 알맞은 일을 거들 수 있게 하자. 아이들은 세상을 소소한 일과 놀이를 통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데 어른들은 지식만 억지로 먹이려 하니 아이들이 힘들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정말 최고의 놀이다. (p122)
느낀점)
▶ 아이들은 무엇으로 살까? 나는 무엇으로 살까?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도 답하기 참 어렵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책을 읽으며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내 삶의 여정이라고 느꼈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찾는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겠다.
나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보니 주로 부모의 모습을 따라하거나 어린이집에서 본 것들을 따라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어린이집 놀이와 엄마아빠놀이다.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도 세탁기, 소꿉놀이, 포대기, 설거지 놀이 등 엄마 역할을 따라하는 것들이었다. 결국 내가 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허용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장난감을 안사줘도 됬었는데..^^;;
그 뒤로 아이들에게 식사도우미를 해달라며 야채를 씻어달라고 하고, 같이 운동화를 빨기도 했다. 조그마한 두 손으로 어찌나 야무지게 해내는지.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한 아이들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 최고의 놀이라는 말에 참 공감이 된다. 아이들에게 더 곁을 내어주고, 내가 하는 일들을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들을 더 많이 갖고 싶다.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내 아이의 놀이 모습을 관찰했을 때, 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저는 오늘 일이 있어 온라인토론 모임에 참여는 힘들것 같습니다 ㅠㅠ
댓글들과 올려주시는 글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놀이의 관점으로 보니 우리 둘째딸 놀이가 충만한 아이더라구요.^^;;; 100장이 넘는 색종이로 만든 인형들을 종이백에 고이 담아놓았는데, 전에는 한낱 쓰레기ㅡ.ㅜ로만 보였던 그 것이 주워온 비석, 공기돌 못지 않은 그 아이만의 역사가 있는 종이더라구요..ㅜ.ㅠ쓸데없는 것 모은다고 타박주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ㅜ.ㅠ
아들이 진짜 놀이에 푹~~ 빠져 지내고 있군요.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하하
그런 아이를 깊이있게 바라보고 느껴가는 영화씨가 너무 좋네요.
아이들은 재미를 위해 계속 놀이를 변형합니다.
그래야 재미있으니까요...
저희 딸은 요즘 스스로 만든 캐릭터로 스티커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50셋트를 만들어 수고하시는 보건소 직원들에게 전해주라며
안방 문고리에 걸어 놓았는데...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아이의 놀이가 발전하는 모습에 흐뭇합니다.^^
2장 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1. 느낀점
8살이 된 아들 요즘 이 아이는 무엇으로 살까? 요즘 놀이를 보면 내가 보기엔 그냥 놀이인데.. 어떻게 하면 더 어렵게 놀까?라고 고민하는 8세…. 왜 그냥 놀면 되지 어렵게 놀아?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요즘 같이 집콕인시대에 뭔가 혼자놀기가 심심해서 그런 생각을 한건지 도통 알 수 없을때 문뜩 이런생각을 해보았다. 몸으로 놀 때 항상 위험한 놀이가 재미있듯이 집에서 노는 놀이 또한 단순함에서 조금 더 진화한 짜릿한 놀이를 생각하게 된게 아닌지.. 가령 자동차 놀이도 그냥 놀이에서 벗어난 자동찻길에 물놀이와 웅덩이가 있어 그 곳을 통과하면서 짜릿함을 느끼는지 알수 없지만 집에서 여러놀이에 빠져있는 지금 이 아이는 가장 행복하다. 요즘 이 아이의 최대 관심사는 ‘팽이’ … 이 아이는 왜 항상 팽이를 만들지? 라는 생각을 했던 찰라… 이 아이는 정말 놀이…를 하고 있는거구나.. 종이든 블록이든 나무든…모든 팽이를 만드는 아이는 결국 놀잇감을 더 잘만들고 싶어 그랬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냥 그렇게 눈으로만 보고 사진으로 저장하지 못한게 못내 아쉬운 애미) 요즘 이 아이의 힘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놀지?” 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아들… 이 엄마는 그 옆에서 허용과 편안한 사람으로 그냥 너그럽게 바라볼 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 아이가 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2. 함께하고 싶은 문장
- 놀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재미보다는 웃음과 따뜻함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즐거움과의 만남이라 하겠다. (p.133)
- 오늘날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 하는 놀이는 놀이라기 보다는 거의 게임이나 레크레이션에 가깝다고 해야 옳다. 설령 그것이 전래놀이나 민속놀이라는 이름이 앞에 붙어 있어도 말이다. 무엇이 놀이이고 무엇이 게임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p.138-139)
- 놀이는 아이들을 세상에 없던 창조의 시공간으로 초대하지만, 게임은 이미 만들어진 질서에 철저히 따를 것을 강요한다. 자유가 있고 실험을 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놀이다 (p.142)
- 웃음과 울음이 없다면 그것을 자유놀이라 부르지 말자. (p.157)
3.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요즘 아이의 관심사 및 우리아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1장-놀이는 아이의 목숨이다.
1. 느낀점
항상 나에게 질문해 왔던 점으로는 ‘과연 내가 놀이의 중요성으로 생각하는게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나 또 한 ‘아이의 뇌를 좋게 해 주려는 생각’에 있어서 인지 아님 ‘놀이를 잘 하는 사람이 창의성이 높아진다’ 라는 생각을 해서 인지.. 아님 내가 놀았던 ‘전통전래 놀이’가 진짜놀이라 생각했던건지 의문을 가졌던 것들이 사라지게 한 1장… 놀이는 머리가 좋아지라고 하는게 아닌 아이가 그 순간을 행복해 할 때, 누가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놀이라는 것을… 어찌보면 나 또한 불안한 엄마의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게 아닐까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아직 8살, 5살 밖에 안된 아이들에게… 요즘같이 집콕인 시대에 조금 더 여유롭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2. 함께하고 싶은 문장
- 놀이 속에 있는 아이가 주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이 놀이이다. 놀아야 사람이고 놀아야 아이이다. (p.29)
- 자본주의에서 양육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물건을 함부로 사주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만약 뭔가 하나를 사줄 수 밖에 없다면 스스로 여러 차례 물어봐야 한다. 아이들이 사는 놀이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이 아이들한테 하는 소리는 딱 하나, ‘사라’다. 당연하게도 이 소비의 고리를 끼워 준 사람은 보호자일 가능성이 크다.(p.51)
- 누가 놀잇감을 비싸고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놀잇감을 누가 더 잘만드느냐가 중요 했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놀고, 놀잇감은 스스로 만들어 논다는 아이들 놀이의 명제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놀이를 언제 시작하겠는가, 어른들이 놀자고 할 때? 아니다, 장난감을 사줬을 때? 아니다. 놀이는 심심해야 시작된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나두자. (p.95)
- ‘놀면서 기다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부디 조기교육, 영재교육, 몰입교육 이라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지 마시라. 지금은 아이에게 자유와 놀이를 허용하고 허용하고 허용할 때다. 너그럽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내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부족함을 느낀다면 유머러스 정도를 추가하자. 아이와 함께 지내는 데 이 세가지면 정말 부족함이 없다.(p.113)
3.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아이와 함께 마트 또는 장난감 가게에서 어떠한 물건들을 주로 사거나 사주시는지…
어디까지 사도록 허용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2장-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함께하고싶은 문장
P)144 가까운 사람이 불편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잘 노는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친절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천천히 알게 되자.
-느낀점
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란 글쓰는데 잠시 멍~~~해진다..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아이들은 무엇으로 살아??"
라고 물었더니 초1학년에겐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고 더 크면 다시 한번 물어봐달란다ㅠㅠ몇일 전 차안에서 첫애가 둘째한테 "아이는 왜 태어나는지 알아?"라고. 물어봤을때 둘째가 "아빠 씨앗 받아 태어나지"둘째 입장에선 최선의 대답이라 생각한다..하지만 첫아인 그말이 아니고 "왜??란 말을 반복한다.나도 궁금하다. 너의 생각..왜?
"아이가 태어나는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태어나는거라고..말한다..말하는 순간 세상을 지키기 위해선 뭘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이든다.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하는지 어른들 또한 명확한 답을 못준거같다.
아이가 있기전엔 놀이는 계속이어졌던거같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잠시 아이가 어릴때 나만의 놀이가 너무나도 간절했고 아이가 어서 잠들기만을 기다리며 옆에서 자는척하며 보초를 서며 어느순간 아이를 재우고 나만의 놀이를 찾으려는 노력도했다.
현실은 노는것 대신 자는것을 선택하기 일쑤...아이를 키우면서 나에게 놀이란 어릴때와 다르게 정말 소박한거같다.
안 본 드라마 몰아보기..남편과 맥주한잔..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떨기 그 외엔 딱히 생각나는 놀거리가 없다.
집 밖에 나가는것은 고사하고,맘 편히 큰소리 못내고 조용히 즐기는 자유시간...
누군가는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안된다고 말을했는데..그 익숙함에 길들여지다 못해 쩌들어있는건 아닌지...
아이들에게 브ㅡ
-질문
우리 아이들에게 난 불편한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아이들이지..
또 좀 더 재미있는 놀거리가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건지..잠자기?놀기?
저는 코로나19로 변한 집콕놀이라하면 아이들과 일상생활을 하고있어요.상차리기,설겆이,빨래널기등등 조금은 서툴고 힘들지만 서로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 엄마가하는 일이 아닌,여자남자의 일이아닌 그 또한 놀이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보면 대견스럽더라구요.^^
2장- 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 함께 하고 싶은 문장
-놀이는 아이들의 놀고 싶음에서 출발해 이해해야한다.
-굴리고 싶고 오르고 싶고 뛰어내리고 싶은 아이들마음에서 놀이는 시작된다.
-놀고 싶을 때 놀이다.
-좋아하는 것을 시켜서 하지 않는 이라는 전제가 쉽게 빠진다.
- 놀잇감을 즐겁게 만들고 ....
-자유가 있고 실험 할 수 있어야 진짜놀이이다.
🍭 느낀점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질문이다.무엇으로 사는가?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행복하게 자기 인생을 이끌며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기 바란다 정도였다. 이러한 삶이 되려면 어릴 때 좋아 하는게 뭔지 어떨 때 행복했는지 등을 느껴보고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구 부모님의 계획대로 이끌러 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우선 내 아이들부터 살펴봐야겠다. 예전엔 내 생각대로 부스체험, 프로그램 되어진 것들에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는 명목아래 많은 시, 마을축제,
기타프로그램 등을 다녔다. 물론 아이들도 좋아하긴 하였으며 그 축제 등에서
얻어지는 것들도 있었다.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올 스톱 되어 아무곳에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금방 끝날거라 생각되어지며 참으며 예전처럼 돌아다닐 수 있을거야하는 희망이 사라진 지금 답답할 때가 더 많다. 하진만 동전의 양면처럼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많이 주어져서 제약 없이 시간을 사용하며 놀이 하게 되었다.이 책에서 나온 한가한 시간 속에서 자유놀이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게 해야한다. 글귀처럼 아이들이 놀이를 긴 시간 집중하며 놀이할 수 있 는시간들이 많아진 것이다.집에서도 이것저것 잘 놀이하는 아이들이었지만 집에 있게 되니
더욱 생각지도 못한 놀이도 하구 보고 있으면 웃기다.
어쩜 이 기회가 아이들의 놀이시간을 가로 채지 않는 긴 자유시간 인듯하다.
🍦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하는 아이들 스스로 하는
집콕 놀이는 어떤 것들인가요? 예전과 조금은 달라진 놀이 모습궁금합니다 .
아이들의 관심, 자유시간사용등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책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공공재로 나아가는게 맞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사유재라고 해도 아이들이 풍요롭긴해도 진정한 놀이보다는 부모에 이끌린 경험이 많기에 소외계층도 안타깝지만 둘 다 공공재가 되어 진정한 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게 우리들이 나아갈 길이겠지요 쉽진않지만요